경제·금융

대선자금 수사의 裏面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두 가지 상충되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그중 먼저는 이번 수사를 정경유착 근절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국민일반의 거센 요구다. 수사의 기간이나 대상을 불문하고 모조리 파헤쳐 수수쌍방을 엄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측의 요구로 수사를 조기 종결하고, 가급적 연루 기업인들을 사면해달라는 것이다.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검찰도 이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과 경제부처 장관들이 기업수사 조기 종결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시간ㆍ정서에 쫓기는 수사 이런 상황 속에서 검찰수사 결과로 정치인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오는 2월 임시국회가 열리기 전에 정치인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다. 다음주부터는 기업인 수사에도 피치를 올릴 전망이다. 정치인에 대한 수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구속될 현직 의원만도 2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그 동안은 돈의 출처조사에 치중했는데 앞으로 용처조사가 진행되면 횡령죄ㆍ뇌물죄로 구속될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정치인의 구속을 가져온 검찰수사의 성과는 상당 부분 기업인들이 수사협조 차원에서 이실직고한 증언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검찰이 기업에 대해 거듭 수사협조를 요청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검찰의 기업에 대한 수사협조 요청은 달리 말해 정치권에 제공된 돈이 불법 조성된 비자금이라는 점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협조의 정도가 형량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말도 공공연하다. 범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감형해주는 플리바겐인 셈이다. 그런데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주요 대기업들은 회사 돈이 아니라 대주주 개인 돈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을 곤혹케 하는 부분이다. 그것이 개인 돈이라면 횡령이 아니라 `과도한 기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선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위해 제공한 돈인 만큼 대가성을 따지기도 어렵게 된다. 검찰로서는 대선 기부금의 출처를 캐기 위해 그룹기업의 모든 비자금을 뒤질 수도 없는 일이고, 뒤진다 해서 혐의가 잡힌다는 보장도 없다. 수사대상 기업들은 대개 연간 매출이 수십조원 단위이고, 이익도 조원 단위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이다. 개인 대주주들의 배당이나 스톡옵션만도 백억원대에 이르는 상황이라 개인 돈임을 입증하기는 오히려 훨씬 쉬울 수도 있다. 그 동안 기업에 대한 수사가 마냥 지연돼온 것은 기업의 협조가 원만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수사를 착수하면서 검찰은 기업에 대한 수사를 연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지금도 종결시점은 2월 말, 총선 전, 총선 이후까지 등으로 엇갈리고 있는데, 기업의 협조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시간과 국민정서에 쫓기고 있는 검찰로서는 수사의 대상과 시점을 일정선에서 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가 정경유착의 고리가 돼온 것은 오랜 관행이다. 검찰의 수사대상 기업 외에도 많은 수의 기업들이 적법ㆍ불법, 액수의 다과를 떠나 정당들에 대선자금을 제공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해 수사를 밑도 끝도 없이 끌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엔 가혹, 기업엔 선처를 수사대상에 오른 기업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로비에서도 이들 기업이 한국을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 기업에 대한 수사만 명확히 매듭지으면 수사는 절반 이상의 성공이다. 사상 유례가 없이 현역 의원의 10분의1에 가까운 구속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이제까지의 수사성과만으로도 성공작이라는 평가는 가능하다. 대선자금 수사가 정치인의 무더기 구속을 결과한 것은 범죄의 유발 책임이 정치권에 더 있는 만큼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선거자금 기부라는 사안의 성격이나 수사협조를 감안할 때 기업의 선처 요구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하겠다. <박찬기 신용보증기금 해외신용조사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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