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금융인 정말 정신 차려야 한다


외환위기로 수십, 수백조원의 혈세를 날리며 줄줄이 문을 닫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회장이 되겠다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회장과 행장이 싸우고, 직원들은 수억대의 연봉도 모자란다며 길거리로 나서고….

이쯤 되면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우리 금융산업의 몰골은 이제 흉하다 못해 처참하다. 10년 넘게 사건과 사고들이 끊임없이 터지더니 급기야 리딩뱅크라는 KB의 회장과 행장이 동시에 중징계를 당하는 초유의 상황에 이르렀다.


국민은 이제 금융인들에게 비판이 아닌 냉소를 보낸다.

학생들이 은행원이 되겠다고 수만명씩 지원하는 것은 그 조직이 좋아서가 아니다. 어린 학생들도 이제 금융인의 추악한 민낯을 뻔히 안다. 그저 중소기업의 두 배가 넘는 초봉을 주고 15년쯤 일하면 1억원 넘는 돈을 번다는 말에 은행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금융인들은 이런 사실을 쉽게 잊는다. 아니 국민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2만명 넘는 식솔을 거느리는 은행의 수장이 잠자리를 놓고 다투고 조직이 흔들리는데도 1년 넘게 일인자 놀음을 하는 것은 상식 있는 최고경영자(CEO)라면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는 진즉 잉태돼온 일인지도 모른다.

리더 자격 상실 등 병폐 심각

금융그룹 회장이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면서 재벌 회장인 것처럼 주인 행세를 하고 측근이라는 사람들은 학맥과 인맥으로 똘똘 뭉쳐 조직을 편 가르고 추잡한 투서로 상대방을 거세해온 우리 금융산업의 막장 상황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정당성을 주장해도 그들은 이미 리더의 자격을 상실했다. 금융감독원장이 무리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재 수위를 중징계로 올린 것은 인과응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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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인들이 관치를 욕하지만 관과 정계의 인물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자리보전용 수단으로 삼은 것은 그들 자신이다. 스스로 정치와 관치를 이용했고 어리석은 인사 놀음이 거대 조직을 다시 한번 망가뜨렸다.

CEO뿐인가. 중간 간부는 물론 일반 행원들까지도 잇속 챙기기에 바쁘다.

1억명 넘는 정보유출이 일어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고객 정보가 담긴 서류가 길거리에 나뒹군다. 모럴해저드를 넘어 범죄행위다. 자신의 조직을, 그리고 고객을 무서워한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보신주의를 질타하자 금융인들은 면책부터 확대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되새길 일이 있다.

'금융은 산업의 핏줄'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인지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것은 금융인이 가져야 할 덕목이자 사명이다. 실물산업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제대로 공부한다면 당국이 그토록 무리하면서까지 기술금융을 하라고 윽박지를 필요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담보대출 관행을 없애라고 푸닥거리를 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다는 말인가.

통합을 놓고 시끄러운 하나·외환은행은 어떤가. 기자는 어느 은행보다 외환은행을 사랑한다. 그들의 아픈 과거가 곧 우리 경제의 그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산업 바닥부터 새 판 다시 짜야

하지만 조기통합이 싫다고 협상조차 하지 않는 것은 억지다. '협상장에 먼저 앉는 것이 이익'이라는 사실이 제3자의 눈에도 보이는데 무조건 싫다고 외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금융당국도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으르렁거리고 당국 내에서조차 내분 소식이 들려오니 한심할 뿐이다. 그들에게 KB를 나무랄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대한민국 금융인들은 이제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한다. 환란 15년을 훌쩍 넘겼는데 세계 50위 은행조차 나오지 않는 초라한 현실을 진정으로 고민해야 한다. 은행을 살리겠다고 천문학적 혈세를 부어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도리를 다해야 한다.

말로만, 껍데기로만 금융산업의 판을 새로 짤 것이 아니라 금융인 전체가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산업의 바닥을 다시 깔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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