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 대통령」의 허실(사설)

경제살리기는 새해 국정목표 중 절체절명의 것이 되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부처와 여야 정당, 대권후보들이 모두 경제살리기를 위해 발벗고 나설 채비다. 아직은 담론 또는 구호 수준에 그치고 있으나 국정의 지도자들이 뒤늦게나마 그런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다행이다. 나라 경제의 취약한 건강상태가 그 이유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지금의 경제상황은 새해들어 모든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올해의 최대 국정이슈인 대통령선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경제회생문제가 선거의 최대쟁점이라는데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경제대통령」을 대망하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다음 대선에서 어느당 후보가 당선될까하는 질문에 여당 후보를 점찍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여당에서 선정가능성이 큰 후보가 나오면 야당 후보는 단일화 여부와 관계없이 누가 나와도 안되고, 야당이 분열할 경우는 여당의 아무 후보와 겨뤄도 승산이 없다는게 대체적인 추세다. ○예사롭지 않은 민심흐름 물론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하고 여론은 시류에 따라 바뀐다. 그러나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유사한 결론을 내고 있다는 사실은 민심의 저변에 도도한 흐름이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에는 간과해선 안될 맹점이 있다. 경제대통령을 열망하면서도 집권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적은 근년들어 최악이었다. 이런 어려운 경제상황이기에 경제회생에의 기대가 컸음은 이해된다. 그러나 경제난의 책임을 져야 할 여당의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들의 국정인식에 상당한 혼란과 굴절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는 무엇보다 실적으로 평가된다. 선진국에서 지난해의 한국같은 경제점수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면 집권당의 인기는 바닥을 헤매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경제가 더 나빠진다면 후보를 내봤자 떨어진다는 위기상황에 놓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유권자들이 차기 대통령은 여당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불신받는 야당의 정책능력 첫째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이 전무한 우리 정치현실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적 정권교체는 정책수행에 대한 유권자의 평가와 선택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런 전통이 없다보니 야당의 정책입안이나 수행능력이 부정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군사정부시절 집권세력에 의한 야당파괴공작에 상당부분 뿌리를 둔 부정적 야당상은 그 위에 야당 스스로의 무책임한 의회운영이 더해지면서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로 정책정당, 이념정당의 전통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정당은 지역과 사람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한 지역당, 붕당적 성격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더이상 정당이름으로 갖다 쓸 어휘가 없을 정도로 해방후 무수한 정당이 생성, 소멸을 거듭했다. 역대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차기 정부 역시 현 정부와 정책적으로 무관할 것이라는 잠재의식이 경제실적과 무관하게 여당의 후보가 차기대통령이 되리라고 보는 여론의 배경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문제는 지역구도에 바탕한 정치산술법을 들 수 있겠다. 역대선거에서 거듭거듭 확인된 지역정서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자포자기적 심정이 정책평가를 도외시하는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게 된 배경일지도 모른다. ○감성투표에 종지부를 그러나 이제는 거기에서 탈피해야 한다. 차기대통령은 금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하는 그야말로 세기적 대통령이다. 그래서 어느 대통령 선거보다 각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차기 대통령을 지연, 혈연, 학연 등 구시대적인 가치관에 의해 선출한다면 경제되살리기는 물론이려니와 선진국이 되는 기회도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찍고서 후회하는 일만 되풀이될 것이다. 지금부터 국민들은 어느당, 어느 후보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집권당의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그 점에서 여당은 후보를 내봤자 소용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각오로 경제회생에 나서야 한다. 차기후보 선정을 앞당겨 두 사람이 같이 뛰어도 경제회생이 될까 말까 한 상황에서 대권논의 조차 막고 있는 현실도 크게 잘못됐다고 본다. 야당은 야당후보의 당선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알아 뼈를 깎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 지역적 파당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야당의 집권은 불가능하다. 대안적이고 성숙한 정책을 제시해 국민의 신뢰를 획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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