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기업가와 기업

한국 최고 부자인 ‘이건희 삼성 회장’과 세계 유수 기업인 ‘삼성’을 놓고 요즘 우리 사회가 홍역을 앓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 회장과 삼성의 부도덕성을 질타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 때리기가 도를 넘어섰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회장과 삼성을 대상으로 한 작금의 모양새는 한발 더 나아가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富)를 축적한 다른 재벌기업과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재벌기업과 기업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홍역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경제가 소득 2만달러 진입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현상으로까지 평가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고려할 것은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과 시각이다. 무 자르듯이 획일적인 흑백논리로 접근하기보다는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얽힌 실타래를 푸는 지혜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가와 기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목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아닌 이윤 창출이다. 이익이 나야 기업은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돈을 벌어야 연구개발을 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국경제를 이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업이 아닌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인데 작금의 현상을 보면 기업가와 기업을 한데 묶어 보는 시각이 적지않은 게 현실이다. ‘제로섬 사회’의 저자인 미국의 레스터 서로 교수는 그의 저서 ‘지식의 지배’에서 정보기술(IT)로 대변되는 제3의 산업혁명이 일상품을 사기 위해 동네 상점을 찾아가던 5,000년 동안의 습관을 막을 내리게 할지도 모른다며 엄청난 변화를 예고했다.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는 핵심세력은 기업일 수밖에 없다. 기업은 우리 사회가 지켜줘야 할 보배다. 아울러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이 회장과 삼성에 대한 결말이 도출되면 더 이상 ‘과거의 죄’를 묻지 않는 성숙함도 필요하다. 기업가로, 기업으로 본연의 책임과 의무를 더욱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한국경제를 위해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존 데이비슬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등 현재까지 추앙받고 있는 미국의 거부(巨富)들은 남북전쟁 당시 300달러를 주고 다른 사람을 군대로 보내 돈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이들의 이 같은 추악한 과거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미국의 사회ㆍ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지난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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