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의 무상보육 확대로 줄줄이 재정공백에 처하자 여권 내에서 예비비 투입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청와대가 지난달 밝힌 예비비 지원책과 궤를 함께하지만 당정 간 이견은 물론이고 당내와 정부 내에서조차 이견이 있어 실제 해법 도출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새누리당 내 일각에서 예비비 6,200억원을 투입해 지자체의 보육예산 공백을 메우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지자체 무상보육 중단 위험에 대해 "정부는 하루 빨리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6월3일 브리핑에서 "예비비와 부처 사업조정을 등을 통해 (지자체 보육사업용)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당 6,200억원 규모 예비비 투입론…정부, "안된다"=현행 국가재정법은 예상치 못한 정부 지출 사항에 예비비를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당초 정부 관측을 훨씬 넘어선 보육 수요로 무상보육 재정 고갈 사태가 터진 데에 돈을 지원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당내에서 이에 대한 입장 조율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정부 역시 반대하고 있어 실현 여부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아직 당정 간에 예비비 투입에 대해 전혀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고 합의한 적이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기획재정부 역시 예비비 편성 가능성을 일축하는 분위기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예비비는 전혀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마지막까지 아껴둬야 하는 돈"이라며 "이 돈을 마구 쓰면 나중에 정작 필요할 때 여유 재원이 없어 정부가 빚을 내 추가경정예산을 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가 쓸 수 있는 예비비는 약 2조원 정도. 당초 올해 예산에 2조4,000억원 정도가 편성됐지만 이 중 4,000억원가량은 국가배상ㆍ형사보상금(780억원), 해외파병(645억원) 등의 용도로 쓰였다. 재정부는 지난해 예상치 못한 구제역으로 총 2조4,000억원에 달했던 예비비를 모두 소진했던 일을 환기시키며 현재 남은 예비비도 이 같은 만약의 재난ㆍ재해에 대비해 아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방채 발행 이자 보전, 추경 등 대안으로=이에 따라 또 다른 대안으로 ▦지방채 발행 이자 국비 보전 ▦추경 편성 ▦세계잉여금 중 1조8,600억원(교부세 정산분) 지원 등이 해결 시나리오로 대두되고 있다.
이 중 세계잉여금 지원 방침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진 의사를 밝힌 상태. 다만 지자체들은 "교부세 정산분 지원은 이미 올해 지방예산에 반영돼 있어 무상보육예산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며 추가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지자체가 일단 하반기 중 지방채를 발행해 시장에서 빌린 돈으로 부족한 예산을 해결하고 나면 정부가 그에 따른 이자비용을 일부 보전해주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방채 발행시 가뜩이나 빚더미를 지고 있는 지자체의 부채 문제를 더욱 키울 수 있어 정부가 원금이 아닌 이자만 일부 보전해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지 않는다는 게 시도지사협의회 관계자의 지적이다.
민주통합당은 또 다른 대안으로 올해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지자체를 지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국가재정법상 추경 요건이 되지 않으며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영을 부추길 수 있다고 반대하고 있어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국가재정법은 ▦전쟁 ▦대규모 자연재해 ▦대내외ㆍ여건의 중대한 변화(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등) 및 변화 우려 ▦법령에 따른 국가 지출 증가 사유 발생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