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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화학산업은 지난 2011년 기준 생산규모 1,387억달러, 무역흑자 188억달러를 기록한 국가 주력산업이다. 하지만 전체 화학업체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의 수익성이 정체되면서 중장기적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인적·물적 한계에 따른 연구개발 역량 부족과 기술경쟁력의 비교 열위를 그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
이런 가운데 한국화학연구원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중소기업 연구역량 강화 사업'이 눈에 띄는 성과들을 잇달아 창출해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화학분야 중소기업들의 부설연구소를 화학연 원내에 직접 입주시키는 데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화학연의 우수한 연구인력과 첨단 연구 인프라를 제공하고 37년간 쌓아온 연구개발 노하우를 전수해 글로벌 히든챔피언으로 육성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입주기업들은 연구과제 기획, 연구개발 자금 지원, 공동 연구, 시험·연구 장비와 시제품 생산시설 활용, 기술이전·사업화 추진 등에서 전방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기업별 맞춤화된 지원을 위한 전담 멘토도 지정된다.
지금까지 도출된 가장 대표적 우수사례는 화학연 연구원 출신의 진승민 박사가 창업한 아이에스엠아이엔씨. 이 회사의 주력 아이템은 분광응용기술을 활용한 혈관탐지장치와 단색화 장치다. 이중 적외선을 이용해 혈관을 쉽게 찾아주는 혈관탐지장치는 기존 수입제품 대비 성능상의 우위를 바탕으로 성형외과·피부과·한의원 등은 물론 하지정맥 진단에도 활용성이 높다는 평가다. 광대역 필터를 통해 빛의 파장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단색화 장치 역시 효율성과 가격경쟁력을 배가해 연간 9조원대에 달하는 디스플레이·반도체 검사 등의 분야에서 약진이 기대되고 있다.
진승민 대표는 "단색화 장치는 이미 양산에 돌입했고 혈관탐지장치의 경우 3월 내에 시제품을 출시해 현장 수요조사와 의료기기 인증을 신청할 계획"이라며 "화학연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해 지속적인 성능 고도화를 모색함으로써 연간 20조원으로 추정되는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기 안산에 있는 온실가스 자원화 전문기업 부흥산업사도 화학연에 부설연구소를 설치하고 이전 받은 이산화탄소 전환 촉매기술의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후 촉매를 활용해 일산화탄소로 전환한 뒤 자동차·모니터·휴대폰에 주로 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 합성수지의 원료인 디메틸카보네이트(DMC)로 전환해 재사용하는 것. 이 회사의 윤길중 연구소장은 "화학연과의 연구협력에 힘입어 첨단 연구 인프라의 활용과 근접지원을 받으면서 신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절실히 체감했다"며 "화학연이 보유한 고순도 정제 및 분석기술, 검사장비 등을 활용할 수 있고 관련 전문가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현 화학연 원장은 "사업시행 전 수행한 설문조사 결과 조사 대상 중소기업의 91%가 적극적인 입주 의사를 밝힌 바 있다"며 "오는 2020년까지 글로벌 화학 강소기업 30개사를 육성해 5,000억원의 매출과 5,000명 이상의 신규 고용을 창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