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사람을 조종하던 광기 어린 눈빛은 악랄함의 도수를 한껏 높여 칼날보다 서늘해졌다. 2010년 영화 '초능력자'를 끝으로 군대에 갔던 배우 강동원(사진)이 4년 만에 '업그레이드 된 악역'으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에서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단칼에 베어버리는, 백성의 고혈을 '야무지게' 빨아먹는 양반 조윤을 연기한 그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너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군도를 복귀작으로 선택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극중 조윤이 임팩트 있는 장면은 있지만 전체 분량은 많은 편이 아니거든요. 주요 배우들이 의적으로 뭉치는 반면 조윤은 홀로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라 '자칫 너 혼자 소모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분량보단 캐릭터와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윤종빈 감독에 대한 믿음이 컸다. "2년 전 사석에서 당시 감독님이 구상하던 아이템(군도)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감독님이 절 만난 뒤 그 시기 준비하던 다른 작품을 아예 접고 군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윤 감독님이면 잘 찍어주실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날 위한 영화'라는 자신감을 증명하기 위해 스태프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다. 속도와 힘 있는 액션을 만들기 위해 5개월 간 전담 강사를 두고 검술을 익혔다. "조선 최고의 무관 출신이란 설정상 '검의 달인'처럼 보여야 했어요. '한번 걸리면 죽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칼 베기 7개 기본 동작을 만들어서 하루에 몇 백번씩 연습을 했죠." 그는 이번 작품에서 주요 액션은 물론 심지어 고삐를 잡지 않고 말을 타는 고난도 묘기(?)도 대역 없이 소화했다. 극중 조윤의 전체 분량은 적지만, 완성도 높은 장면을 위해 여러 번 촬영을 시도하면서 회차는 주요 배우 중 가장 많았다.
그가 꼽는 명장면은 조윤이 매복해 있던 추설 무리에 나홀로 맞서는 장면이다. 전설의 17대 1도 울고 갈 무려 '30대 1'이다. "감독님이 롱테이크(장면 분절 없이 한번에 촬영)로 가고 싶다고 주문하시더라고요. 합을 맞춰 찍었는데 한번은 힘이 덜 들어갔고 또 한번은 카메라 워크를 바꾸느라 이틀 치 촬영분을 다 날렸어요. 총 11회차까지 가서야 오케이가 났죠."
2003년 데뷔 후 연기 생활만 벌써 10년이 넘었다. 배우로서 꾸준히 감독들의 '위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비결은 뭘까. 답변은 담백했다. "저는 배우로서 배수의 진을 치고 살아요. 연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크게 다른 일을 벌이지 않는 자세가 감독님들 마음에 들었던 게 아닐까요."
갈수록 현장이 좋아진다는 그는 "최고의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연기와 흥행, 국내와 국외에서 모두 인정받는 배우가 되어야죠. 한국 배우로서 세계적인 배우도 되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