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여름철 전력 수급 대책] 정부가 원전 부실관리 해놓고 고통 분담은 대기업에 떠넘겨

3,000개 대기업 최대 15% 강제 절전<br>철강·시멘트·자동차 등 원가상승 부담<br>준공 앞둔 火電 시운전 물량까지 동원<br>공공기관 피크시간 사용량 20% 감축


31일 발표된 정부 하계 전력수급대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대기업에 대한 강제 절전규제다. 정부의 수요관리 목표 450만kW 가운데 절반 이상인 250만kW가 대기업 강제 절전규제를 통해 확보된다. 이는 100만kW급 원자력발전소 2기를 상쇄할 수 있는 규모로 이 대책이 없으면 사실상 하계 전력수급은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대책이라는 게 원전 가동 중단으로 잃어버린 전력을 대기업의 고통분담을 통해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안일한 원전관리로 반년 만에 다시 대형 사고가 터지도록 방치해놓고서 정작 고통은 기업들에 넘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3,000개 대기업 최대 15% 강제 절전…나머지는 선택형 요금제=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공급능력 확보를 통해 190만kW, 수요관리와 절전 등을 통해 450만kW를 확보해 하계 전력피크에도 예비전력을 440만kW 이상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위조부품 파동으로 원전 2기가 가동 중단돼 8월 둘째주 예비전력이 -200만kW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총 640만kW가량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 비상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효과가 큰 것은 대기업에 대한 절전규제다. 정부는 5,000kW 이상 대형 수용가 2,836호에 3~15% 수준의 감축 의무를 부여할 계획이다.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과장은 "최대 감축 의무인 15%를 적용 받는 곳은 철강ㆍ시멘트업체 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절전규제는 오는 8월5일부터 30일까지 4주간 실시되며 확보되는 전력은 약 250만kW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5,000kW 미만 수용가에는 선택형 최대피크요금제(CPP) 또는 수요관리제도가 실시된다. CPP는 피크에는 요금이 할증되고 비피크에는 할인되는 새로운 전기요금제도다. 가격기능을 통해 수요를 분산하겠다는 것인데 말 그대로 '선택형'이기 때문에 기업이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화력발전 시운전까지 활용…공공기관 20% 감축=정부는 전국에서 가용 가능한 발전자원도 총동원하기로 했다. 공급능력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서다. 심지어 준공 예정인 화력발전소의 시운전 출력물량까지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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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7월 말 준공 예정인 화력발전소들을 6~7월에 시운전하면서 약 100만kW가량의 전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고장으로 가동이 멈춘 한빛(영광) 3호기, 한울(울진) 4호기 등 2개의 원전도 이른 시일 안에 재가동하기로 했다.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대책도 실시된다. 일단 계약전력 100kW 이상인 공공기관은 피크시간대 전력사용량을 전년 동월 대비 20% 이상 감축하도록 했다. 문을 열고 냉방 영업행위를 하는 '개문냉방'에 대한 단속도 크게 강화되는데 계도기간 없이 1차 경고 후 바로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여름철 냉방온도는 대형 건물은 26도, 공공기관은 28도 이상으로 제한된다. 지난해에는 냉방온도 제한 대상 건물이 476개였는데 올해는 무려 6만8,000개로 늘었다.

◇산업계 원가 상승요인…원망 목소리 커져=산업계는 강제 절전규제 등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절전규제로 가장 높은 의무감축률(15%)를 부과 받을 것으로 보이는 철강ㆍ시멘트업계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철강협회의 한 관계자는 "피크시간에 조업을 인위적으로 줄일 경우 원가 상승요인이 발생한다"며 "가뜩이나 철강 시황이 좋지 않은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업종들도 비상이 걸렸다. 도장ㆍ프레스ㆍ용접 등 공정마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자동차업계는 일부 라인만 중단해도 생산이 올 스톱된다. 생산라인을 멈출 수 없다 보니 비생산라인을 위주로 절전을 더욱 강화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현대ㆍ기아자동차 관계자는 "만성적인 수출물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전력 사용에 따른 누진요금을 낼지언정 생산량을 줄일 수 없는 노릇"이라며 비생산라인을 중심으로 고강도 절전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전자업계 역시 반도체ㆍLCD 등의 경우 24시간 풀 가동돼야 하고 라인이 한 번 서면 피해가 막심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겠지만 블랙아웃 등 최악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며 "결국 정책뿐 아니라 전기를 가지고서도 기업을 압박할 것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종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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