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음악으로 일본인에게 힘을


지금 일본사람들의 슬픔을 뭐라 달랠 수 있을까? 21세기 최고로 발달한 문명국에 몰아 닥친 지진과 해일은 사람과 재산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그러고도 아직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고 원전은 이미 여러 개가 파손된 것에 그치지 않고 사상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인명 피해는 이미 확인된 사람만 1만 명을 넘어섰고 최고 1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오페라 선진국이었던 일본 세계 최고의 부유한 선진국이자 과학기술이 발달했으며 전자제품을 잘 만들고, 또한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해 아직 미움이 남아 있는 일본. 오페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는 47개국 39억 명이 사는 아시아 전체보다 더 많은 약 100개의 전문 오페라단이 있고 훌륭한 오페라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에서만 200개의 아마추어 오페라단이 있을 정도로 일찍이 음악과 오페라를 즐기고 발달시켜온 일본. 그러한 일본이 자연의 힘 앞에서 순식간에 무기력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그 잔해들을 보면 인간이 참으로 자랑할 것도, 교만할 것도, 미워할 것도, 부러워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주어진 소명과 하루하루 일상에 감사하고 가족과 사람들을 감사하면서 겸허히 살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런데 그 생지옥을 방불하게 하는 혼란스러운 고통 속에서 일본인들은 놀라울 만큼 침착한 대응을 보여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당장 생존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생필품과 유류를 사기 위해 질서 있게 줄을 서며 무너진 가게 담벼락으로 들어가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더 큰 슬픔을 당한 사람에 대한 배려 때문에 큰 소리로 통곡하는 것까지 스스로 자제한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보고 서방의 한 언론은 "인간 정신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일본인의 모습은 마치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초호화 유람선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탈출하기 위해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구명정에 먼저 타기 위해 서로 밀치거나 끌고 당기고 하는 생존을 위한 사투가 벌어진다. 이때 악사들이 침착하게 악기를 들고 연주를 시작한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아비규환을 이루던 승객들이 질서를 되찾고 차분하게 줄을 서서 차례대로 구명정에 승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폐허의 불길 속에서 차분히 질서를 지키는 일본사람들에게 그 악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 최고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즐겨 부르던 노래'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들으면 슬프다 못해 처연한 느낌까지 들 때가 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사랑하는 여인 아디나의 눈물을 보며 사랑을 표현하는 아리아다. 내용의 흐름이나 가사가 그리 슬픈 노래는 아니지만 그저 곡조는 아주 우울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잔잔한 선율로 슬픔 이겨내길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한국인 지휘자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렵던 시절에 정말로 힘들고 어렵거나 괴로운 일이 생기면 일부러 이 노래를 계속 반복해 듣는다고 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새 슬픔이 가시고 새 힘이 돋는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도 그 말이 기억나서 그 노래를 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그의 말대로 고통과 스트레스의 복합적인 감정이 차분하게 정돈되면서 스트레스나 고통이 사라지고 안정된 감정 상태를 회복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의 귀한 아들딸이고 엄마 아빠인, 또는 남편과 아내인 사람 수만 명이 죽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들을 잃은 채 남겨졌다. 그분들에게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는가? 다만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는 한 곡의 음악이 이들 곁에 있어서 친구가 돼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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