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공정하고 투명한 선진경제

박동식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이사장>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콜롬비아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001년 ‘정보경제학(information economics)’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이 학문 분야는 사실상 그가 개척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보경제학이란 쉽게 말해 경제주체들이 정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갖고 있지 못한 경우 그것이 자원배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자원배분의 왜곡과 그 해결 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13일 신년 기자회견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스티글리츠 교수가 평소 강조해온 ‘시장과 정부의 역할’이론이 문득 떠올랐다. 노 대통령이 이날 광복 60주년이 되는 올해를 ‘선진한국’ 건설의 출발점으로 만들자면서 그 전제조건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제도’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공정성과 투명성은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ㆍ사회ㆍ교육ㆍ문화ㆍ국방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적용돼야 하는 기본 원칙이다.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 관계자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상식 중의 상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식이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효력을 발휘하지 못해왔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묵인 아래 사실상 경원(敬遠) 또는 방기(放棄)돼왔다는 데 있다. 이는 분명 부끄러운 일이지만 겹겹이 주름이 진 우리 역사를 생각하면 마냥 자괴할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의가 강처럼 넘치는 사회’라는 구호는 필자가 대학생이었던 60년대에 운동권 학생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표현이다. 추억을 자아내는 고색창연한 이런 구호는 지구촌경제시대인 오늘날에는 ‘정보가 강처럼 흐르는 세상’쯤으로 변해버렸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정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급하기로는 정보가 먼저인 것이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정보경제학은 무엇보다 이런 맥락에서 그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경제는 정보가 강처럼 흐를 때 최대의 성과를 낸다. 예를 들어 특정한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다고 할 때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중개하는 사람 등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 관련 정보를 공정하게 공유할 때 시장은 최적의 기능을 발휘한다. 여기서 ‘공정하게’라는 말은 ‘대칭적으로(symmetrically)’라는 뜻이다. 네가 가진 정보나 내가 아는 정보나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시장경제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지난해 여름 미국의 전설적인 여류 기업가 마사 스튜어트가 자신이 투자한 생명공학업체 임클론의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한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 신문들은 이 사건으로 연일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것은 그녀가 그만큼 유명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정보를 ‘비대칭적으로(asymmetrically)'으로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처럼 성숙한 시장경제체제에서 이런 행위는 당연히 맹렬한 비난의 표적이 된다. 나름대로 정의감에 넘치는 경제학도라 자부하며 70년대 중반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에 입문해 연필 한자루에 청춘을 걸고 국가경제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는 40ㆍ50년대의 교육혁명에 이어 60ㆍ70년대의 경제혁명, 80ㆍ90년대의 정치혁명이라는 3중의 혁명을 성공시켰다(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그 결과 고학력사회의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교역 규모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으며 근년 들어서는 정보기술(IT)을 위시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실력과 저력을 발휘하면서 선진국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는 2008년 우리의 소망대로 국민소득 2만달러시대를 열자면 무엇보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이제부터라도 지상의 가치로 존중해나가는 버릇을 단단히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사회 전분야에 골고루 스며들어야 하지만 우선 경제부터라도 이들 원칙을 금과옥조로 섬겨나가야 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시장경제 이론을 포괄적으로 제시한 이래 다양한 형태의 시장경제 실험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는 공정성과 투명성이야말로 시장경제의 양대 버팀목임을 절감하게 됐고 이들 원칙을 둘러싼 시장과 정부의 바람직하고 고유한 역할에 대해 나름의 정설을 갖게 됐다. 남은 것은 실천이다. 대통령의 기자회견 가운데 한 대목이 특히 희망적이었다. “정부가 규제나 권력으로 기업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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