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유가ㆍ원자재가 급등과 원화 강세로 힘들 한 해를 보냈다. 적자기업이 23%를 넘어섰다고 한다. 증시 호황에 힘입어 자금조달에 숨통이 트인 벤처업계는 터보테크ㆍ로커스의 분식회계 및 황우석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되돌아본 중소기업계의 2005년을 4개의 테마로 정리해 본다. ◇고유가, 원화 강세로 신음= 올해 초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서서히 살아날 조짐을 보여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유가ㆍ원자재가 급등과 원화 강세라는 ‘복병’을 만나 많은 중소기업들이 수익성 악화로 홍역을 앓은 한 해였다.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거나 오히려 낮춰 고유가, 내수침체에 따른 어려움을 중소기업에 떠넘기는 대기업의 횡포도 여전했다. 원가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매출부진과 함께 채산성 악화에 신음해야 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중소기업 생산증가율(-1.6%)은 외환위기 때인 98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적자 상태에 놓인 중소기업도 95년 17%에서 올해 23%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달러ㆍ엔화에 대한 원화의 강세는 가장 힘겨운 악재였다. 중동 두바이유 국제거래가격도 지난해 1분기 배럴당 29.51달러에서 올 1분기 41.58달러로, 4분기에는 52.95달러로 치솟았다. 인천 남동공단의 한 금형업체 사장은 “환율이 떨어져 팔아도 돈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중국산 제품의 유입, 동종업체간 경쟁에 따른 비용 상승을 가격에 반영하기 힘들어 수출마저 포기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년이다. 내수침체와 끝없는 원자재값 상승으로 내년 수출 및 경기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분식회계 파문= 벤처업계는 터보테크와 로커스의 분식회계 사실이 밝혀지면서 큰 홍역을 치렀다. 5년여 만에 찾아온 코스닥 시장의 호황을 다시 한번 둘러 보게끔 하는 사건이었다. 터보테크는 지난 9월 7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장흥순 회장이 벤처기업협회장은 물론 경영 일선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한 달여 뒤엔 김형순 회장이 이끄는 로커스가 파문을 일으켰다. 사태가 확산되자 정부도 대응책을 내놓았다. 우선 내년부터 분식회계 파문의 주요 원인이 됐던 양도성예금증서(CD)나 기업어음(CP)에 대한 감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오는 2007년 집단소송제 실시에 앞서 내년까지인 ‘분식회계 자진 신고기간’을 적극 활용할 것도 주문했다. 분식회계를 자진신고할 경우 처벌 수위도 2단계 낮추는 등 당근책도 내놓았다. 벤처업계도 ‘벤처기업 투명경영 실천 포럼’을 발족하는 등 윤리경영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벤처 거품기 당시 무리한 자금 조달과 과도한 투자 등을 업보처럼 짊어진 벤처 1세대 기업인의 분식 파문은 이후에도 끊이질 않았다. 터보테크, 로커스 사태 이후 동진에코텍, 씨엔씨엔터프라이즈 등의 분식회계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업계에 대한 불신과 시장의 불안감은 좀체 가시질 않고 있다. ◇벤처 생태계 강화= 분식회계 파동속에서도 벤처 생태계는 오히려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출발점은 정부가 내놓은 벤처 활성화 대책. 기존 대책이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에 치중했다면, 이번에는 벤처 인프라 육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벤처 활성화 대책 가운데 첫 손에 꼽을 만한 일은 올해부터 오는 2009년까지 매년 2,000억원씩 1조원을 벤처ㆍ중소기업에 투자하는 모태펀드 출범. 펀드 운용의 주도권을 둘러싼 숱한 논란 끝에 지난 6월 한국벤처투자가 설립돼 아직 역량이 부족한 국내 벤처캐피털 업계는 한 시름을 덜었다. 정부가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바이오 벤처기업의 증시 상장을 지원하기 위해 수익성기준을 완화하면서 많은 바이오 기업들이 증시 입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벤처캐피털의 벤처기업 경영권 지배 허용, 사모투자펀드(PEF) 활성화, 창업투자회사에 대한 감독 강화 등도 올해 초 500포인트를 밑돌던 코스닥지수가 한때 750포인트까지 치솟게 한 동력이었다. 증시가 살아나자 지난 2000년 벤처 거품기 때 결성됐던 1조2,000억원 규모의 벤처조합 청산으로 골머리를 앓던 벤처캐피털 업계도 기사회생했다. 이는 벤처투자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케 했다. 지난 11월 말까지 벤처캐피털의 벤처 투자규모는 6,000억원으로 지난 해 연간 5,600억원을 뛰어넘었다. 국민연금, 산업은행 등 대형 기관의 벤처 투자를 포함하면 벤처 투자규모는 더욱 커진다. 다만 벤처 생태계 전반의 질적 개선 속에 터진 ‘황우석 쇼크’는 향후 바이오 벤처기업의 성장에 불안감을 드리웠다. ◇남북경협 안정화= 지난해 말 입주가 시작된 개성공단은 올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개성공단은 지난해 12월15일 리빙아트를 시작으로 현재 11개 업체가 순차적으로 공장을 완공,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좋은사람들 등 16개 중소기업을 비롯해 협동화사업화단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추진하는 아파트형 공장 등도 공사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정부는 개성시와 판문군 일대 총 2,000만평(공단 800만평+배후도시 1,200만평)을 3단계로 나눠 개발할 계획이다. 아울러 지난 10월에는 평양에 남북 첫 합영기업(주식회사)인 ‘평양대마방직’이 창업식 행사를 치러 개성 이외 지역에도 남북경협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약 6,500여명의 북측 근로자들이 일을 하고 있으며 업무 효율과 입주업체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통행ㆍ통신ㆍ통관 등 ‘3통(通)’ 가운데 통신 문제가 남북간 합의와 미국 정부의 승인으로 해결돼 입주업체의 통신환경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통행ㆍ통관 문제도 남북관계에 따라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남북경협이 한 단계 더 성숙되려면 북한의 자원 활용과 기술교류, 합작ㆍ합영 등 다양한 방식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의 관심이나 역량이 개성공단에 집중되다 보니 다른 대북사업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 개성공단이 외부와 단절돼 있어 경협 효과가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