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원전센터유치 신선한 제안

야구는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미국의 국민스포츠다. 이것이 일본으로 유입돼 이제는 일본도 야구왕국이라 할 수 있고 우리나라도 프로팀이 운영될 정도로 야구 열기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야구경기의 기본 룰은 두 팀이 번갈아 공격과 방어를 9차례 되풀이하고 여기에서 많은 득점을 한 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9차례의 공방전에도 불구하고 승부가 나지 않으면 연장전까지 이어져 최종 승부를 가리게 된다. 지난 18년간 원전수거물관리시설(이하 원전센터)의 부지 선정을 둘러싼 정부측과 지역주민 사이의 공방전은 마치 양 팀 모두 득점 없는 야구경기를 진행한 듯한 느낌이 든다. 야구는 축구와는 달라 전ㆍ후반전의 구별이 없으나 그래도 5회전을 중심으로 전ㆍ후반을 나눈다면 이제까지의 원전센터 공방전은 일단 전반전을 소화해낸 것 같다. 이제까지의 경기운영 실적을 보면 정부측의 완패다.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제1회전 경남 양산 등지에서의 시도는 1루에 진출조차 해보지 못한 채 삼진을 당했고, 2회전 안면도, 3회전 덕적도에서는 간신히 주자를 내보내기는 했으나 마찬가지였고, 4회전 위도에서는 3루까지 주자를 내보내 잘하면 홈인의 득점 가능성이 보였으나 이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해 벽두인 지난 7일 서울대 교수 63명이 원전센터를 서울대 부지 내의 관악산에 유치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러한 서울대 교수들의 제안은 그 실현 가능성을 떠나 표류하는 국책사업의 해결방안에 신선한 자극과 논란을 던져줬다. 이에 대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지역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 병폐를 치유하는 데 지식인으로서의 실천적 시대정신을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현재 법 체제나 제도 내에서 서울대가 독자적으로 논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서울대 원전센터 유치거부 의사를 밝혀 이번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 제안의 당사자가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들이 학자적 양심을 걸고 소신을 밝혔다는 점에서 원전센터 건설 문제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됐다고 본다. 이제까지 원전센터의 건설에 관한 주요 쟁점은 원전수거물의 안전성 및 원전센터 부지 확보절차의 합법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전자가 기술적 측면의 문제라면 후자는 법적ㆍ사회적 측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고도의 종합과학기술적 성격을 지닌 원전수거물에 관한 안전성 확보 문제는 일단 전문가들의 영역으로서 안전성의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과학적 이론과 실질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우리나라에서 원전센터의 건설이 추진될 때마다 격론이 불붙은 사항은 안전성 문제보다 오히려 절차적 문제였던 것 같다. 실체적 측면은 별로 문제가 없는데도 절차적 측면이 지나치게 왜곡됨으로써 실체에의 접근이 거의 봉쇄돼버렸다. 이번 서울대 교수들의 제안을 놓고 `즉흥적 발상`이라고 비난한 관악구청장의 발언이나 구청측과 사전 협의 없이 성명을 발표했다며 유감을 표시한 것도 절차적 측면을 내세운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제안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나라인가를 먼저 따져봐야 하며, 이것이 어떤 절차를 위배했는지 세상을 향해 물어봐야 할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은 원전센터 추진의 어려움이 가중될 때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지도계급의 사회적 책무에 고뇌했고 이번 제안은 그러한 정신의 구체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전수거물의 이동 문제라든가 인문지리적 환경을 고려할 때 나라의 중심인 수도에 원전센터를 건립하자는 그들의 제안은 사실 일종의 고육지책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 총장의 변(辯)처럼 이번 건의를 기점으로 풀기 어려운 국책사업을 과학적 진실에 입각한 사회적 합의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전통이 세워지길 바라며, 영광보다는 고통과 수난이 따를 원전센터 문제에 해결방안을 제시한 서울대 교수들의 용단에 다시 한번 존경을 보낸다. <함철훈 (가톨릭대 법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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