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디플레 가능성과 대응책

세계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은 지난 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장기불황을 겪는 과정에서 이미 디플레를 경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디플레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특히 세계경제의 경기순환이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발 디플레는 전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경제의 디플레를 우려하는 견해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하락세를 지속해 8월 말 현재 1.8%로 70년 1.1% 이후 최저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실질이자율의 상승 가능성이 과거보다 상당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또한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차지하고 있는 경상수지 적자가 내년에는 6%대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앞으로 내수위축 및 달러화 약세를 동반하는 조정국면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디플레의 경제적 파장은 아주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기술(IT) 산업의 부진, 증시불안 등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플러스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민간소비가 견실한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디플레가 발생한다면 GDP의 약 76%를 차지하는 가계부채의 실질부담이 크게 늘어나 민간소비가 급속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디플레에 따른 미국의 경기후퇴는 민간부채의 부실화로 이어져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디플레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올 3ㆍ4분기 중 전세계의 민간소비는 약 2.9%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미국의 민간소비 증가율이 약 4.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유로 지역 및 일본의 민간소비 증가율은 각각 1.6%와 1.1%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즉 미국의 디플레는 전세계적인 소비위축과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디플레로 인해 미국의 성장세가 급격하게 둔화될 경우 올해 들어 대미(對美)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완만하게나마 회복세를 나타냈던 유로 지역과 일본의 경기회복을 더이상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미국에서 앞으로 디플레가 발생할지 속단하기 어렵다. 미국의 민간소비를 지탱해왔던 부동산시장과 자동차시장의 호황세가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이고 있으나 고용여건이 개선의 징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9월 말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5.6%로 3개월 연속 하락했으며 비농업 부문의 고용자수도 7월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금융시장 불안, 이라크 침공 가능성, 유가불안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어 미국의 디플레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발생 가능성이 있는 미국 디플레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국내경제의 불안요인을 하루빨리 제거해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부동산시장의 버블은 임금상승ㆍ물가상승ㆍ금리상승 등으로 연결되면서 과거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고비용 구조를 형성, 물가안정기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을 위험이 있다. 올들어 폭발적인 신장세를 나타냈던 은행권의 가계대출도 최근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가계의 대량파산과 금융회사의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세계경제의 디플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와 같은 버블요인은 우리 경제의 경착륙을 유도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하다. 가계대출의 급등세 및 부동산 버블의 완화를 위해서는 개인신용관리의 강화, 가계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의 상향 조정 등 금융권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미시적인 조치와 더불어 금리조정 등을 통한 거시적인 대응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금리인상은 한번에 큰 폭으로 단행하기보다는 소폭으로 여러 번에 걸쳐 시행함으로써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취득했거나 주택을 임차한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부채규모를 조절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 해 왕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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