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창조경제보다 창조정치

애매모호한 창조경제 구호만 무성 지도자의 창조적 결단은 길이 남아<br>루스벨트·브란트·사다트 배워야 국민대화합 불러올 창조정치 절실


애매모호하다. 학자든 장관이든 창조경제를 똑 부러지게 설명하는 사람이 없다. 201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토머스 사전트 서울대 겸임교수(70)는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불쉿(Bullshit)!' 허튼소리, 잠꼬대 같은 얘기라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창조경제의 성과가 나오면 좋으련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외 경제여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주무부처 장관마저 그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창조경제라면 정치적 구호로 그칠 가능성을 지우기 어렵다.

정권초기의 추진력을 실체가 불분명하고 성공 가능성까지 희박한 창조경제에 쏟기는 너무 아깝다.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마당에 보다 확실한 선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창조정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빌리 브란트, 안와르 사다트의 창조적 결단은 국내 정치는 물론 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다.


대공황의 시작과 함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루스벨트는 과감한 복지 확대를 포함한 뉴딜정책을 강행해 경제난 극복의 기반을 마련하기까지 무수한 반대에 부딪쳤다.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의 보수파와 GMㆍ모건ㆍUS스틸 같은 대기업들이 모여 루스벨트의 '빨갱이 경제정책'에 맹공을 퍼부었다. 일부는 부유층 태생인 루스벨트를 '출신계급에 대한 배반자'라고 몰아 부쳤지만 그가 남긴 성과는 역사에 빛난다. 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이끌었다. 혁신과 창조정치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는 나라와는 수교하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을 버리고 동방정책을 표방하며 적극적인 대동구권 외교에 나섰을 때도 여론이 들끓었다. 좌익에 영혼을 팔아먹었다는 비판까지 나왔어도 오늘날 브란트는 독일 통일의 초석을 깐 지도자로 추앙 받는다. 1971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묘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사죄하는 모습은 요즘도 감동을 안겨준다. 창조정치의 힘은 이토록 강하다.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1977년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해 중동평화의 길을 열었다. 이스라엘과 화해를 반대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암살 당했어도 그는 커다란 족적을 남긴 지도자로 각인돼 있다. 1977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 사이의 상하이 정상회담도 양국의 결단과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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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큰 지도자로 평가 받는 정치인들의 행위에는 창조정치라는 공통점이 나온다. 박 근혜 대통령도 창조정치로 위대한 지도자의 대열에 포함되기 바란다. 다행스럽게도 박 대통령은 창조정치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남북한의 평화통일과 공존의 염원을 담은 7ㆍ4공동성명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창조정치가 가져온 성과다. 대북 고급정보는 물론 박 대통령의 비밀까지 낱낱이 알고 있는 실세이며 2인자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평양으로 보낸 용기와 배짱 덕분에 7ㆍ4공동성명이 나왔다. 비록 남북한이 공동성명을 체제 강화의 수단으로 악용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고(故) 박 대통령의 창조정치만큼은 평가 받아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아 있는 창조정치의 유전자가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믿고 싶다.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교수를 노사정위원장으로 발탁한 점은 고무적이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인사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정치세력 간 화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 대통령이 펼쳐야 할 창조정치의 일정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바로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국가정보원의 수장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점과 경찰이 대선을 사흘 앞두고 밤11시에 전례 없는 중간수사 결과를 왜곡해서 발표했다는 점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 사안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대통령 사퇴론은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나오면 좋겠다. 더욱이 대선 결과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 사람은 대통령 자신 외에는 없다. 최소한의 사과와 명명백백한 수사를 촉구하기 바란다.

박 대통령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사건의 해결에 힘쓴다면 그 자체로서 국민들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다. 지지도 역시 오르리라 믿는다. 화합하고 책임지는 정치의 모습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역사에 남는 지도자들은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바꿨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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