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네덜란드식을 비롯, 유럽형 노사 모델의 도입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네덜란드 모델의 옹호자들은 `유럽의 문제아`였던 네덜란드가 새로운 노사정 모델을 도입한 후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2만5,000 달러의 고소득 국가로 부상했다며 홍보성 기사를 싣고 있다.
문제는 네덜란드가 새로운 모델을 도입하는 과정과 한국에서 이 모델을 수용할 경우의 과정이 다르다는 점이다. 네덜란드에선 좌파 세력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안이 만들어졌지만, 한국에선 이른바 진보적 개혁 세력이 세를 확대하면서 내놓은 카드라는 사실이다.
한국은 축구에선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 감독을 수입해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경제에선 한국이 네덜란드로 대변되는 유럽식 모델을 따르다가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미형 국가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르헨티나에선 2차 대전 직후 후안 페론이 노동자의 힘을 빌어 정권을 장악하고, 이른바 페론주의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꼽히는 페론주의는 그 후 군부 정권 시대에서도 아르헨티나 사회 곳곳에 뿌리 내렸다. 노조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 결과로 경제 전반에 고질병이 창궐했다. 페론주의는 근로자들에게 직장을 철 밥그릇처럼 보장해 주었지만 근로자들은 적당히 일해도 봉급을 받으니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산업은 정부의 보호를 받아 생산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고 전화가 제대로 걸리지 않았으며, 우편물이 전달되지 않는 게 다반사였다. 정부는 인민들에게 빵을 주기 위해 돈을 무제한 찍어냈고, 그 결과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었다.
한국에서 유럽형 모델을 논의하는 것에 대해 해외 언론의 시각은 따갑다. 뉴스위크는 최신호에서 `한국은 사회주의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고, 비즈니스위크는 유럽식 모델을 수용하려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의 글을 게제한바 있다.
유럽식 모델 자체가 노동 탄력성을 보장하는 미국식 모델보다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이미 90년대에 입증됐다. 독일에선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정치 생명을 걸고 연금제도를 뜯어고치고 있다. 유럽 국가 스스로가 제도적 결함을 인정하고 있는 실패한 제도를 청와대 핵심 인사를 비롯, 정책 입안자들이 받아들이려는 것은 90년대 이후 세계 흐름에 대한 지적 공백 때문이 아닐까.
<이재용기자 jy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