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열린 경제부처 간담회가 이렇다 할 결론이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사실상 연기된 것은 경기부양을 위한 실천적 방안 마련이 그만큼 어렵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은행까지 성장을 강조할 정도로 성장잠재력 회복을 위한 경기부양의 당위성은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금융불안 해소, 신용불량자 대책, 부동산 억제, 서민층 생활안정 등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워낙 많아 각론 조정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 잠재력 회복에 총력=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이날 `성장에 무게중심을 둔 경제정책`을 강조했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물가를 책임지는 중앙은행의 체질 자체가 속도조절론에 무게를 두는 스타일인데다 물가불안우려 역시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 총재가 성장을 강조했다는 점은 두 가지 때문으로 풀이된다. 첫째는 우리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점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예산 편성방침이 일찌감치 알려진데 이어 금리까지 내렸는데도 실물과 금융시장 어느 부문에서도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두번째는 경기부양에 관해서는 정부 부처와 통화물가당국인 한국은행간 의견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이 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두가지 주요 정책수단이 한꺼번에 동원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지만 단기 효율성은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가 이처럼 성장을 강조하는 것은 국내 경제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나빠지고 있어 성장위주의 정책을 펴지 않는다면 다른 정책목표도 달성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만이 실업해소책=그러나 당장 대책이 나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21일로 하루 연기된 이날 긴급 경제장관 간담회에서도 청년실업 해소방안과 추경안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됐으나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다만 서민ㆍ중산층 생활안정대책도 경제성장이 수반되지 않으면 별 성과가 없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실업자 증가 등으로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박승 총재의 말에서서 다급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21일 열리는 경제장관간담회에서는 청년ㆍ취업취약층 고용안정, 창업 및 경제활동 활성화, 주거생활 안정 등을 위한 방안을 추경에 반영하는 것이 중점 논의될 예정이다. 서민들의 생활이 어렵다는 점이 최대고려사항.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14.3에서 지난해 5.8로 떨어졌으나 올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지난 3월말에는 8.1선까지 올라왔다. 이는 서민들의 생활고가 그만큼 가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강국면의 경기상황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이 가장 크다”는 김 부총리의 말에서 정부 인식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청년실업 해소방안과 사회간접자본 시설확충도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한시적 고용을 늘리고 이공계 대학생에 대한 지원도 크게 늘리는 등 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직장체험 프로그램 대폭 확대와 청소년 취향에 맞춘 온라인상의 동영상을 통한 인원확충방안 등 세부사항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장관간담회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정이 촉박해 추경안의 윤곽을 잡기 힘든데 다 다수당인 야당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부담도 있기 때문이다. 또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비중을 둬야 하지만 서민생활안정대책에 필요한 예산요구도 줄잇고 있는 형편이다. 미래투자냐 서민층 달래기냐의 조율이 남은 셈이다.
<임석훈기자 sh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