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은행 대출담보 평가 믿을 수 없다

은행들과 감정평가 업계가 대출담보물 평가에 따른 수수료 문제로 대립하면서 일선창구의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감정평가협회는 은행 측이 담보물 감정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며 그동안 무료로 제공해온 탁상자문 서비스를 지난 7일부터 전면 중단했다. 탁상자문은 담보물을 일단 서류로만 검토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담보가치가 대략적으로 인정되면 비로소 현장조사 등 본격적인 감정절차에 들어가는 것이 은행 담보대출의 일반적 원칙이다.


은행들은 지난해 135만건의 탁상자문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정식 감정의뢰로 이어진 사례는 13.3%에 머무른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무료로 제공 받은 탁상자문 서비스에 적당히 자체 분석을 곁들여 마치 정식 감정평가서인 것처럼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은행권이 고객들로부터 해마다 수조원의 수수료 수입을 챙기면서도 자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담보물 평가 같은 기본적 과정조차 자의적으로 운영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은행들은 정식 평가 서비스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아 최근 4년간 감정평가사들에게서 떼어먹은 돈이 2,2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행태는 지난해 법원에서 고객이 아닌 은행이 담보설정 비용을 부담하라는 판결이 나온 후 더 심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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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평가와 관련된 변칙행위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은행들은 객관적 자료가 충분해 자체 평가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은행 영업방침에 따라 현장조사의 원칙이 무시되거나 들쭉날쭉 고무줄 평가가 될 위험이 크다. 자의적인 평가는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담보가치가 떨어질 때 은행 건전성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금융회사가 직접 감정평가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은행들의 자체적 감정평가를 조장하는 감독당국의 평가 시스템 개선방안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대출인이 요청하면 외부평가를 받도록 하는 등 예외조항을 만들었다지만 현실적 여건을 감안할 때 제대로 지켜지기 힘들다. 은행 내부에 대출부서와 평가부서 간의 견제 시스템을 만들고 감사체제를 한층 강화하는 등 확실한 보완책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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