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원칙을 지켜라


[데스크 칼럼] 원칙을 지켜라 한기석 사회부장 hanks@sed.co.kr 지난 2008년 중소기업을 취재할 때 가장 큰 이슈는 '키코'였다. 환 헤지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은행 얘기만 믿고 이른바 키코라는 통화옵션상품에 가입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에 쓴 칼럼을 보니 이런 대목이 있다.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132개 업체의 6월 현재 키코 손실액이 3,228억원이었다. 이 금액이 9월 현재 9,466억원이 됐으니까 석 달 만에 200% 증가했다. 아무리 살인적인 사채이자라도 여기에는 명함을 내밀 수 없을 것이다.' 票퓰리즘 탈법 대책 그만둬야 키코 손실액은 그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해 상반기에만 전년의 8배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낸 태산LCD를 시작으로 중소기업의 도산이 줄을 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저축은행 사태라는 또 다른 대형 이슈가 터졌다. 그런데 이슈가 터지자마자 귀를 의심할 정도로 이상한 얘기가 정치권에서 흘러나왔다. 이 사태는 국가의 잘못이 크니까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였다. 그 때만 해도 "정치인들의 허풍이란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우스갯소리도 아니고 뭣도 아닌 그 얘기가 현실로 다가왔다. 저축은행 피해자에게 예금보장한도인 5,000만원을 넘겨서까지 보상해주기로 여야가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키코 사태와 저축은행 사태는 물론 별개의 사안이지만 비슷한 구석이 꽤 있다. 키코 사태는 거대 금융사가 중소기업을 상대로 불공정한 상품을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고 팔아 큰 손실을 안긴 사건이라는 게 중소기업들의 주장이다. 저축은행 사태는 역시 거대 금융사가 분식회계로 자신을 포장한 채 서민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큰 손해를 입힌 사건이라고 피해자들은 설명한다. 사태의 내용은 비슷한데 해결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키코 사태가 발생하자 피해기업들은 조직을 꾸려 소송을 진행했다. 은행들이 잘못했으니까 잘못한 만큼 처벌을 받고 피해를 입힌 만큼 배상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형사 쪽에서는 검찰이 은행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해 끝났고 민사 쪽에서는 1ㆍ2심에서 법원이 은행 측 손을 들어준 채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주장한 키코 상품의 불공정성, 은행의 사기, 은행의 과다 마진 책정 등은 어느 것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소기업들로서는 분통을 터트릴만한 일이다. 하지만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이들은 마지막 남은 대법원 판결을 기대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같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키코 사태가 정해져 있는, 그래서 누가 봐도 타당하고 당연한 절차를 거쳐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저축은행 사태는 초법ㆍ탈법의 길을 걸으려고 한다. 원칙깨는 정치인들 표로 응징을 저축은행 사태 역시 참으로 안타깝고 화나는 일이다. 더구나 여기에는 정부가 관리감독을 똑바로 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부분까지 더해져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해져 있는 길을 마다해서는 안될 일이다. 저축은행 사태도 키코 사태와 마찬가지로 민ㆍ형사상의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처벌받을 사람은 처벌받고 손해를 배상해야 할 사람은 배상하면 된다. 손해배상액으로 피해액을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는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원칙이 있다. 원칙은 넓게는 도덕, 좁게는 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지금 정치인들은 저축은행 사태를 해결한다는 미명 하에 이후 있을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법을 어기려고 한다. 국회 저축은행국정조사특위 피해대책소위에 참여하고 있는 4명의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이번 야합이 '표'라는 사리사욕은 전혀 개입되지 않고 오직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충정에서 나온 결정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법을 어길 생각은 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기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당신들이 먼저 당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서민들을 돕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도 있다. 원칙이 깨지면 사회도 깨진다. 지금 정치인들은 원칙을 깨려고 한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될까.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표로 응징하는 방법 밖에 없다. 저축은행 사태 후폭풍…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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