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규제=악' 시각은 위험… 숫자 줄이기보다 질적 개선 힘써야

대청소식 완화와 함께 부작용 상시 감시체제 추진을

각 부처 규제담당관실 일할 맛 나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

신산업·서비스부문, 대기업 투자 길 터주기 가장 시급



지난달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끝장토론 형식으로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 이후 관가는 규제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대통령의 발언과 맞물려 각 부처 장관들은 국무조정실이 제시한 목표치보다 더 많은 규제를 없애겠다며 공무원들을 다그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잡은 후 규제완화는 이 정부 들어 시행된 어떤 정책보다도 가장 탄력 있게 추진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같은 전방위적인 규제완화 움직임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들린다. 규제완화의 필요성만큼이나 규제의 당위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 움직임을 가장 반가워해야 할 산업계의 싱크탱크 김도훈(사진) 산업연구원장도 "'규제는 나쁜 거다'라는 시각이 너무 팽배해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도 맡고 있는 김 원장은 지난 대통령 주재 끝장토론에서 규제 검증이 필요한 분야와 관련, "봄이 오면 쳐들어오는, 황사와 같은 존재가 의원입법(규제)"이라고 언급해 국회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만큼 규제완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원장은 "규제도 결국 따지고 보면 국민이 만든 것"이라며 "디레귤레이션(deregulation)이 아닌 베터 레귤레이션(better regulation)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제의 질을 따져 '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봄맞이 대청소식의 규제완화도 필요하지만 규제의 부작용을 상시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규제 철폐는 곧 선(善)이 돼가는 상황에서 '규제를 어떻게 조정하는 게 좋은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원장은 '규제완화는 선, 규제는 악이다'식의 이분법은 기업을 옥죄는 부당한 규제만큼이나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규제는 본래 굉장히 중요한 정책적 목적 또는 국가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정되는 것입니다. 그걸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무턱대고 규제를 없애기 앞서 어떤 과정에서 그런 규제가 만들어졌는지 먼저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선진국에 가까워질수록 양적으로 규제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얼마나 늘었다'식의 숫자적 접근으로만 규제 문제를 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김 원장은 "사회가 발달할수록 환경·안전·교육·사회복지·보건위생 등의 부문들에 대한 국민적 욕구는 커지기 마련"이라며 "규제의 숫자만 보면서 양적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기보다는 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도 여러 각도에서 해석해봐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실 우리 몸의 일부였다가 왜곡된 것이 암덩어리 아니겠습니까. 규제도 본래는 좋은 목적으로 태어났을지 모르지만 그쪽만 강조하며 스트레스가 쌓이면 암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규제 숫자 줄이기에 급급하기보다는 변질되고 효용성이 떨어진 규제들을 중심으로 규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김 원장이 거듭 강조한 것이 '베터 레귤레이션'이다. 이는 규제장관회의에서 영국 대사가 인용한 영국 방식의 규제완화정책이기도 하다. 그는 "규제를 양적인 해소가 아닌 질적인 개선 쪽으로 생각하면 할 일이 더 방대해진다"며 "현재 등록된 정부규제 1만 5,000개를 10% 감축하겠다는 식의 정책 드라이브도 분명히 필요하긴 하지만 규제를 시대의 변화에 맞게 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규제완화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 그 부분에서 김 원장의 원칙은 분명했다. "사회적 흥분상태에서 만들어졌던 규제들을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예로 든 것이 일부 대기업의 화학물질 사고 이후 만들어진 화관법과 화평법 등 화학물질 규제다. 이들 규제는 법이 만들어지던 초기에만 해도 대기업의 기업활동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수준으로까지 추진돼 상당수 언론들의 질타를 받았고 결국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기업의 요구가 간신히 반영됐다.

그는 "이름을 알 만한 대기업 사고가 터지면 규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올라가고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커지며 이걸 등에 업은 국회의원들과 공무원들이 규제를 한 방향으로만 만들게 된다"며 "여기에 사법부까지 가세할 경우 마치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범법행위로 취급하는 식의 잘못된 규제가 만들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규제의 부작용을 꾸준히 검증할 수 있는 상시적인 시스템이다. 그는 "규제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규제의 목적 달성은 성공하고 있는지, 규제의 부작용은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민간 파트와 공조해 체크가 이뤄져야 비로소 완결된 규제의 심사체계가 갖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규제개혁위원회가 그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력은 너무 적고 일은 너무 과중하다"며 "규제심사에서 대한상의·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장치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시적인 규제검증시스템을 강조하면서도 대통령이 이끄는 정치적 리더십은 규제완화의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라고 꼽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규제개혁을 추진하면서 강조한 세 가지 중에서 정치적 리더십은 가장 첫번째에 있어요. 정치적 리더십이 없는 국가에서 규제개혁은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지난달 있었던 규제개혁장관회의 끝장토론도 그런 차원에서는 매우 성공작이라는 것이 김 원장의 평가다. 그는 "단순히 장관들만 모아놓은 회의였으면 규제완화의 모멘텀을 이렇게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며 "민간까지 광범위하게 끌어들여 확실히 이슈화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다만 대통령이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준 후 그 다음의 과정들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봄맞이 대청소식의 규제완화와 매일매일 진행되는 규제완화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며 "대통령이 반년에 한번씩 모멘텀을 만들어주되 나머지 기간에는 시스템을 구축해 규제완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규제완화가 가장 시급한 영역으로 대기업들의 투자와 맞물린 신산업과 서비스 부문을 들었다. 원격의료처럼 신기술과 서비스가 만나는 영역, 교육이나 관광시스템처럼 낙후된 서비스업에 대기업의 자본투자가 유도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영역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제가 심하고 기존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큰 곳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벤처활성화 역시 대기업들의 자본과 투자가 발판이 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생각이다. 공적자금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그간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벤처를 지원했지만 공적자금이 안고 있는 문제는 모험적 투자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라며 "벤처에 대한 투자와 사업화는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집단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스크를 안고 투자를 하는 데는 민간이 훨씬 더 유연하고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다.

다만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확장하고 인수합병 이후에는 기존 조직을 내버리는 대기업의 행태가 오늘날 스스로 대기업의 발을 묶어놓는 규제를 양산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구글이 왓츠업을 인수할 때 어떤 식으로 했느냐 하면 돈만 주고 운영은 알아서 하라고 맡겨놓았습니다. 우리 대기업은 그런데 인수하면 기술자 몇 명 빼앗아가버리고 기존 인력 쫓아내고 그런 행태를 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발이 묶인 것이에요." 김 원장은 규제개혁의 키는 결국 공무원이 가지고 있는 만큼 공무원 조직이 규제완화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각 정부부처의 규제담당관실이 실질적인 규제완화의 창구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무총리실은 규제개혁을 강하게 드라이브하고 있는데 막상 정부부처의 규제담당관실은 고생하는 사람이 잠시 쉬어가는 보직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 같다"며 "규제담당관실이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보직이 돼야 하고 국무총리실과 끊임없이 호흡해야 규제완화가 시스템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신이 나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도 말했다. 김 원장은 "이번에 해결된 손톱 밑 가시 문제 70~80개를 보면 30% 정도가 법령의 해석만 바꾸면 되는 문제였다. 이러니 공무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규제완화의 정말 중요한 열쇠가 공무원의 자세라고 본다. 막 억누르지 말고 신바람이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He is…


△1957년 부산 △1975년 부산 동래고 △1979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1990년 프랑스 파리1대학 경제학 박사 △1979~1997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1997년 통상산업부 장관 자문관 △1997~199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무역국 수석행정관 △1999~2006년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장·동향분석실장·연구본부장 △2006~2013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3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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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규제硏이 모태… 경제·법학 교수 등 조화 이뤄 개혁 앞장

■ 주목받는 한국규제학회


지난달 20일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 끝장토론에서 사회를 맡은 이는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이다. 그는 한국규제학회 2대 회장으로 현재 규제학회 고문으로 활발한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 전 국민 앞에 생중계된 당시 토론에서 매끄럽고 명쾌한 진행으로 지루해지기 쉬운 끝장토론에 활기를 불어넣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날 토론에서 눈여겨볼 사람은 김 교수뿐만이 아니다. "2년 전에 서울시에서 집을 한번 지어봤는데 그때 제가 느꼈던 무기력감, 낭패 의식, 이런 것 꾹 참고 전문가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말씀드리겠다."

이렇게 작심한 듯 말을 꺼낸 후 '국민 눈높이'에서의 규제개혁을 강조했던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학회의 6대 회장이다. 그는 최근까지 규제지도 분석 등 정부 규제개혁정책의 핵심적인 부분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런가 하면 의원입법을 '황사'에 비유하면서 국회에도 규제검증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바로 규제학회 7대 회장이다.

규제개혁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면서 규제학회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정부 규제개혁을 학계에서 뒷받침하는 규제학회 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창립된 규제학회는 1993년부터 모임이 시작된 규제연구회를 모태로 한다. 당시는 김영삼 정부 때로 군부정권에서 벗어나 행정쇄신이 이슈가 되던 시절이다.

규제연구회 초기 멤버들은 매달 한번씩 규제 및 규제개혁과 관련한 이슈들에 대해 서로 연구한 것을 발표하고 토의하는 연구모임을 결성했고 현재까지도 규제학회 안에서 이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규제연구회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대대적인 규제개혁을 시행하게 되면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다. 규제개혁의 근간인 행정규제기본법이 만들어지는 데 이론적 실무적인 토대를 제공하게 된 것. 김 원장은 "규제학회의 전신인 규제연구회 멤버들은 새로운 정부규제의 틀을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이후 규제연구회는 2002년 규제학회로 창립했으며 최근까지 정부·재계 등과 함께 활발한 규제개혁 선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에 규제학회 교수들이 수행한 정부 용역들을 살펴보면 △경쟁제한적 규제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물류·통신 분야 등) △2014 기업애로 규제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의원입법 규제 모니터링 등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과제들이 상당수 눈에 들어온다.

규제학회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다른 학회와는 달리 참여 교수들의 전공이 경제학·경영학 주류와 법학·행정학 주류로 반반씩 잘 분배돼 있다는 점이다. 학회 회장 역시 양대 주류가 서로 번갈아가면서 맡고 있다. 규제의 행정적·경제적 문제점과 방향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셈이다.

김 원장은 "규제학회는 서로 다른 계열의 전공교수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규제의 품질을 제대로 개선하기 위한 이론적 틀을 정부와 한국 경제 전체를 향해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대담=이철균 경제부차장 fusionc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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