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가족과 함께 교회 가는 시간을 빼고는 연구실 밖을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申교수는 과학자가 연구실을 떠나 연구를 소홀히 하는 순간 이미 과학자로서 자격을 상실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140편이 넘는 자성체에 관한 실험과 연구논문을 국내외 유명학술지에 게재하고 170회가 넘게 학술회의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申교수는 나노(10억분의 1)미터 세계에 인생의 대부분을 바쳤다.
그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의 유학과 이스트만 코닥연구소 선임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89년 귀국했을 때 국내의 나노과학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형편없이 뒤떨어져 있었다. 국가의 연구지원은 거의 전무했을 뿐더러 관련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악조건도 그의 나노과학에 대한 연구열은 꺾지 못했다. 학생들과 밤을 새가며 필요한 연구장비를 직접 만들었다. 얼마 되지 않는 연구비 마저 잊을만하면 한번씩 간간히 나왔던 탓에 부품하나 사서 조립하기를 여러번 반복한 뒤에야 장비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한번은 자성체 연구에 필수적인 고순도 철로 만든 자석이 없어 애를 태운 적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이런 철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수입해야 했지만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낼 정도였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맞는지 우연히 러시아에서 온 포스트 닥터 과정에 있는 학생 아버지가 이 자석을 제조하는 철강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 당시는 러시아와의 수교 초기여서 대금을 지불할 방법이 없었다. 미국에 송금하고 미국서 다시 러시아로 송금하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 끝에야 꿈에도 그리던 자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고생하며 만들어낸 장비로 실험을 반복하며 밤을 지새는 중에 그는 어느덧 세계적 과학자로 우뚝 서게 됐다.
申교수는 『우리 학생들의 머리는 어느 나라 학생보다도 뛰어나지만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라고 말한다. 또 『주말이라고 연구를 팽개쳐서야 어떻게 최고의 과학자가 될 수 있겠냐』며 『우리 학생들은 지적 탐구에 대해 항상 배고파하는 헝그리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서인지 申교수는 토요일 오전 내내 그룹 미팅을 갖는다. 서울에 집이 있는 학생들이 주말에도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잡아두기 위해서다.
申교수는 일반국민의 과학화,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과학마인드를 심어주는 일이 과학자의 중요한 사명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지난 94년 약 1년 동안 TV 과학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과학 대중화에 노력했다. 또 96년에는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 수행과 창조적 고급 과학인력 양성을 위한 고등과학원 설립의 산파역을 맡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보면 가정생활에 소홀하기 십상이겠지만 그에게는 가족들의 불만을 달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 약속한 시간만은 지킨다는 것이다.
일요일 오전은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고 저녁엔 외식을 한다. 가족들에게 남편과 아버지로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방법이 꽤 효과적인지 가족들의 불만 때문에 연구에 지장을 받은 적은 없다고 한다. 그가 가족들에게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申교수는 하느님이 창조한 물질의 세계를 이해하며, 이로부터 인류복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문명의 이기를 개발하는 것을 과학자로서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임동석기자FREU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