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실효성 없는 친환경 건축


환경과 에너지는 인간의 삶 그 자체다. 환경이 인간을 위한 삶의 터전의 전부라면 에너지는 터전의 동력이다. 인간은 에너지 없이 살 수 없을뿐더러 오염된 환경 속에서도 건강한 삶을 결코 누릴 수 없다. 인간은 공기 없이 3분 이상을 버틸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다. 이처럼 환경과 에너지는 인간에겐 더없이 소중하다. 에너지는 사용량만큼의 유해물질을 배출해 삶의 터전을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이것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쓰레기가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자원 고갈의 진행이며 탄소배출로 인한 온난화 촉진으로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지만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을 뿐이며 그 대안이 친환경인 것이다. 그러나 생활 속의 친환경은 긍정적인 면만 부각돼 있을 뿐 정작 감당해야 할 고통은 잊고 있다.

과도한 디자인으로 무늬만 친환경


21세기 친환경의 패러다임 속에 친환경 건물을 짓겠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친환경 건물은 쉽게 볼 수 없다. 친환경 재료나 요소기술 적용만으로 친환경 건물이 되는 것으로 과장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 제로건물, 패시브 하우스, 제로 에너지 하우스, 에코 하우스, 생태건축, 지속 가능한 건축, 그린 빌딩, 그린 홈 등을 비롯해 에너지 플러스 건물까지 등장했다. 이들 건물은 친환경의 장점만을 추상적으로 내세우고 있을 뿐 실효성은 의문이다. 친환경 건물의 정체성은 물론 친환경이 추구하는 목적조차도 정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포장만 친환경 건물로 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름만 붙이면 친환경 건물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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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건물은 덜 쓰고 덜 배출하는 건물시스템을 기본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단열성능이 좋은 남향건물은 난방 에너지소비뿐만 아니라 난방설비 용량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단열과 건물방위를 통한 열적 성능향상은 건축적인 설계기법이며 난방에너지와 설비용량을 줄이는 것은 설비적인 설계기법이다. 건물은 언급한 두 설계기법의 조합으로 설계한다. 그러나 친환경 건물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생애주기 설계기법을 적용한 매우 정밀한 설계를 해야 한다. 적용된 요소기술 하나의 실효성보다는 건물 전체의 실효성을 더 중시해야 한다. 이는 나무를 통해서 풍성한 숲을 얻는 이치와도 같다.

유사인증 정비ㆍ설계지침 재정립을

최첨단 친환경요소 기술을 적용해 지은 최신식 공공청사가 지탄을 받은 것은 친환경 건축의 정체성을 잊은 과도한 디자인 때문이다. 그 결과 겨울철 한낮에 남쪽은 찜통이 되고 북쪽은 냉골이 되는 건물이 탄생된 것이다. '에너지효율등급제'나 '녹색건축'이 친환경건축 실현을 위한 제도가 되려면 인증의 실효성을 정량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추구하는 목적이 같은 유사인증을 중복해서 받아야 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를 초래하는 제도의 모순이다. 분별없는 신ㆍ재생에너지 이용만을 고려한 태양광 발전이나 태양열 이용시스템의 적용도 문제다.

유한한 자원의 낭비를 막고 환경 부하를 줄일 수 있는 친환경 건물 설계는 건축가가 지켜야 할 윤리이자 사명이다. 하지만 요란한 친환경관련 제도와 용어만 난무할 뿐 건축가가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 건축의 설계기법은 정립돼 있지 않다. '녹색건축'과 '에너지효율 등급' 등 인증제도가 있다곤 하지만 설계과정에서 건축가가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된다. 건축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친환경 재료사용이나 요소기술을 적용하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친환경 건축의 정체성 확립과 실현을 위한 건축설계지침의 제도적 정립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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