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현지시간) 오후1시 뉴욕 맨해튼 8번가에 위치한 코넬대 공대 뉴욕분교의 임시 캠퍼스. 인터넷 업체 구글이 무상으로 임대해준 3층 건물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며 연구과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뉴욕시가 정보기술(IT) 혁명의 본산인 서부 지역의 실리콘밸리를 따라잡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메이드 인 뉴욕' 프로젝트 산실 가운데 하나다.
올해 1월부터 첫 학기를 시작해 교수진도 단 10명에 불과한 탓에 다소 초라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뉴욕을 '동부의 실리콘밸리'로 키우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실제 코넬대 뉴욕분교는 뉴욕시가 무상 제공한 루스벨트섬 부지에 총 10억달러를 들여 오는 2017년 본 캠퍼스가 세워지면 교수진 30명, 학생 300명 규모로 재탄생한다. 궁극적으로 교수진과 학생 수를 각각 200명, 2,00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대니얼 허튼로셔 학장은 "학생들이 기술 자체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기업가적 사고방식을 갖춰 사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대 과제"라며 "특히 창조성과 모험을 조화시킬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ㆍ캘리포니아공대 등 주변에 막강한 공대가 포진한 실리콘밸리와 달리 우수인력 부족의 한계에 시달리고 있는 뉴욕시로서는 또 하나의 날개를 다는 셈이다.
이미 뉴욕은 무서운 기세로 실리콘밸리를 추격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에서 창업한 벤처기업은 127개로 실리콘밸리(131개) 수준에 도달했다. 또 시장조사 업체인 프리브코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 소재 IT업체들 간의 인수합병(M&A) 횟수는 100여건으로 규모도 83억3,000만달러에 이르렀다. 과거 경쟁자였던 시애틀ㆍ보스턴ㆍ오스틴 등을 멀리 제치고 실리콘밸리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이다.
이 같은 약진은 뉴욕시가 세계 금융과 문화ㆍ언론의 중심지라는 이점 덕분이다. 자금이 넘쳐나 기술력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언제든 성공의 발판이 마련돼 있다는 얘기다. 또 실리콘밸리와 달리 다양한 산업이 존재해 벤처기업인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도 갖췄다.
뉴욕시도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 시절부터 우수 대학들과 파트너십을 통한 기술 및 멘토링 지원 등 벤처기업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령 뉴욕시는 NYC시드를 통해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 40만달러 규모의 인력훈련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뉴욕시 인큐베이터 시설에는 900여개의 신생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에 힘입어 2008년부터 올 초까지 뉴욕의 IT 관련 고용은 30%나 늘었고 미국 전역에서 뉴욕시의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3%에서 4%로 증가한 상황이다.
이처럼 벤처육성책이 속속 효과를 보자 빌 더블라지오 현 뉴욕시장도 산학협력에 1억5,000만달러, IT 신생기업에 투자하는 연기금에 1억달러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기업들도 뉴욕지점을 속속 강화하고 있다. 뉴욕 소재 경쟁사나 벤처캐피털 등의 움직임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어 나만 코넬대 공대 교수는 "뉴욕은 다양한 자본과 미디어ㆍ소매업체를 가져 마케팅에도 유리하다"며 "학교도 예비창업자와 자본 간 연결 등을 통해 뉴욕시의 기술 허브가 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뉴욕이 아직 실리콘밸리를 추월한 정도는 아니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10억달러 이상 벌어들인 신생기업 창업자 가운데 70%가 실리콘밸리 출신이다. 댄 허튼로셔 학장은 "(IT 전반에 강점을 가진 실리콘밸리와 달리) 일단은 미디어ㆍ환경ㆍ헬스케어 등 뉴욕시에 특화된 기술이나 사업 아이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욕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과거 금융에 집중돼 있던 산업구조를 바꿨다는 데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레러벤처스의 에릭 히퓨 파트너는 "뉴욕이 실리콘밸리를 따라잡건 말건 중요한 사실은 벤처기업이 뉴욕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