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디자인업체는 한 지방자치단체의 화장품 개발 조달 입찰에 참여했다 서류작성에 큰 애를 먹어야 했다. 이 업체는 전체 입찰 가운데 화장품 포장지 디자인 부문에만 참여했는데 같은 입찰이라는 이유로 서류 준비사항이 사실상 화장품 제조와 동일했기 때문이다.
특히 입찰 가격을 제안할 때 노무비ㆍ경비ㆍ재료비 등 원가 항목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하는데 영세업체의 디자인 제작의 경우 인건비를 제외하면 다른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데도 재료비 등 각 항목을 억지로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다. A업체 대표는 "재료비 항목을 채우기 위해 계산도 되지 않는 잉크 값 등을 지어내서라도 기입할 수밖에 없었다"며 "물품 납품업체와 디자인업체에 거의 같은 기준의 서류작성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부ㆍ공공기관이 조달시장에서 복잡한 입찰 서류사항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중소업체의 불만이 비등하다. 무엇보다 제조업 위주의 입찰 서류 체계에 대해 디자인ㆍ광고 등 일부 지식기반 업체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제조업과 달리 재료비 등 인건비 외 비용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가격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미미해 계산하기 힘든데다 결과물이 서류상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많아 절차 간소화를 요구하고 있다.
B디자인업체 대표는 "과업 수행 실적이나 회사 정보 등 객관적으로 증빙할 수 있는 사항은 상관없지만 디자인 표현전략ㆍ표현방식 등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까지 서류로 작성해야 해 난감하다"며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는 시안 내용이 당락을 결정하는데 이를 서류화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옴부즈만의 한 관계자는 "다수공급자계약(MAS)을 들여다보면 대다수 입찰이 물품 관련이다 보니 수요 기관에서 지식기반 용역에 대해서는 신경을 못 쓰는 것 같다"며 "특히 이들은 무형가치가 있는 것들이어서 수요 기관도 애매한 평가기준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뿐만 아니라 조달 입찰에 필요한 서류량이 많으면 수백 쪽에 달해 서류작성 담당 전문 인력이 부족한 작은 업체일수록 부담이 크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C업체 대표는 "우리 업종의 경우 조달 입찰 참여시 서류만 최소 30장에서 많으면 100장 가까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입찰뿐 아니라 낙찰된 뒤에도 복잡한 서류를 계속 작성해야 해 차라리 공개경쟁입찰에 참여하느니 수의계약 방식을 따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꼬집었다.
조달청은 업계의 이러한 불만에 대해 "책임 소재 발생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서류작성 과정이라도 문제 발생시 예산을 쓰는 수요 기관이 책임을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 조달청의 한 관계자는 "물품 성격에 따라 필요 서류가 수백 쪽에 달할 때도 있지만 단순 물품은 고작 한 쪽짜리도 있다"며 "서류사항을 무조건 간소화하면 수요 기관 입장에서도 관련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과물에 문제가 생길 경우 수요기관은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리스크가 크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