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9월 6일] 경제규모 걸맞는 문화의 힘을

필자는 약 5년간 러시아의 중앙러시아국립극장(크라스노야르스크)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서 여러 작품을 지휘했다. 또 구소련권의 알마아타극장과 타슈켄트극장, 그리고 몽골 국립극장 등에서도 객원 지휘자로 활동을 한 바 있다. 이들 극장에서는 연중 끊임없이 오페라와 발레, 그리고 국민음악극이 공연되고 있다. 국민음악극은 국가정책적 창작지원으로 자국민 작곡가에 의한, 자국민 소재의, 자국민 언어로 된 것을 매 시즌 한 편 이상 반드시 올리고 있다. 이들 극장에 소속돼 일하면서 한국에는 오페라 상설극장이 몇 개나 있으며 한국 오페라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 참으로 난처한 입장이 된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성대히 치르고 국민총생산(GNP)이 2만달러나 되니까 훌륭한 창작 오페라 작품과 전용 극장 몇 개쯤은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한국의 대표도, 한국 음악계의 대표도 아니면서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오페라 상설극장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방 공연장들은 물론 대표적인 오페라하우스들도 상업적 공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공연도 몇 편이 있으나 세계무대에 내놓을 형편은 못 되며 양적으로도 미미하다. 관계 당국이 시행한 21세기 문화 정책을 위한 한 조사에서는 우리 국민이 여러 문화장르 중 클래식과 오페라공연을 관람한 비율이 0.1%도 못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관계당국과 교육당국의 노력은 보이지를 않는다. 중ㆍ고등학교에서는 이제 음악을 꼭 공부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음악 대학들도 지원자가 줄어들어 점차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다가는 바로 우리의 세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돼 전 세계 각 분야에서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할 즈음에도 “베토벤이 뭐예요?”라고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는 요즈음 오는 10월에 올림픽홀에서 공연할 오페라 카르멘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오페라의 찬란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은 초연 때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150년을 이어오며 전 세계 주요 극장 어디에선가 오늘밤에도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작품이기 때문에 프랑스 문화와 음악의 높은 수준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스페인 집시들이 갖는 낭만과 열정, 그리고 투우와 투우장의 열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문화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이처럼 오페라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사람의 눈과 귀와 마음을 수백년간이나 사로잡고 있으며 또다시 다가올 수백년, 그리고 그 이후의 수백년까지 이어가면서 세계인을 감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얻어지는 경제적ㆍ문화적인 이득은 한두해 반짝이다 사라지는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결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의 끊임없는 노력과 지원 없이는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중음악이나 일반 문화상품처럼 시장의 기능에만 맡겨 둔다면 곧바로 황폐화돼 국민정서와 함께 고갈되고 말 것이다. 음악인들의 사명 또한 크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살아 숨쉬는 민족혼을 일깨우는 위대한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 그리고 세계인의 양심을 일깨울 만한 시대적인 현실 등 훌륭한 오페라가 될 만한 수많은 음악적 소재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세계인을 놀라게 할 만한 음악적 인재들이 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유혹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켜 한국과 세계와 자기 인생을 위해 남기는 것 또한 참으로 풍요롭고 귀한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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