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Living&Joy] 파란눈 장금이들 즐거운 타향살이

김치와 와인 닮은 꼴입니다

남들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점심과 저녁 때가 셰프들에겐 가장 바쁜 시간. 때문에 한 자리에 모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점심 영업이 끝난 뒤 짬을 내 한 자리에 모인 윌드, 로시, 비디니, 쿠퍼, 르막숑씨(왼쪽부터) /이호재기자

한국 손님들 요리지식은 전문가 수준에 매너까지 좋아 대장금의 나라답죠 …맵고 짠 음식 좋아한다는 건 편견이었어요 …한국 요리사들은 군대 처럼 빈틈없고 정확히 움직이죠… 감자탕에 소주 한잔, 삼계탕과 김치는 끝내주는 요리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달라지는 김치는 와인하고 비슷해요. “대장금의 나라 사람들, 한국인은 모두 요리 전문가입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소득이 높은 직업군을 꼽으라면 특급호텔 주방장이 빠지지 않는다. 서구에서 ‘셰프(chef)’라고 하면 요리사, 특히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주방장을 뜻하는 일컫는 말로, 존경과 선망을 받는 직업 중 하나다. 고소득인데다, 외국을 돌아다니며 일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철학을 담은 창조물’을 만드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도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최근 들어 크게 달라졌다. 요즘 중국에서 일고있는 MBC TV 드라마 ‘대장금’의 열풍 또한 이러한 인식 변화와 큰 관련이 있다. 셰프가 되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규율과 서열이 엄격한 것은 서양의 주방도 마찬가지. 대부분이 20세 이전 주방 막내로 시작해 손이 불어 터질 때까지 재료만 다듬으며 수년간을 보낸 뒤 칼을 잡고, 불을 만질 수 있는 위치를 거쳐 셰프가 된다. 우리나라의 특급호텔들도 요리 책임자로 외국인을 영입한 지 오래다. 호텔이라는 곳이 원래 ‘국제 표준’의 맛을 추구하는 곳인데다, 최근에는 한국인 손님들도 본고장 입맛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곳곳을 다니며 일하다 현재 한국서 일하고 있는 요리의 달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요리와 삶, 그리고 서울살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날 자리에 모인 셰프는 아니타 비디니(이탈리아ㆍ여ㆍ49) 밀레니엄 서울 힐튼 이탈리아 식당 ‘일 폰테’ 요리장, 로빈 쿠퍼(호주ㆍ여ㆍ36) 롯데호텔서울 와인바&레스토랑 ‘바인’ 조리장, 프랑크 르막숑(프랑스ㆍ34) 서울프라자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토파즈’ 조리장, 페데리코 로시(이탈리아ㆍ34) 웨스틴조선호텔 이탈리아 레스토랑 “베키아 앤 누보 주방장, 크리스티안 윌드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수석제과장(오스트리아ㆍ44) 등 5명. 기자는 먼저 한국 손님들의 입맛을 물었는데 이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한국인들은 모두 음식의 전문가입니다. 대단한 지식들을 가지고 있어요. 음식과 건강의 관계까지 훤합니다. 심지어는 음식 만드는 테크닉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더군요.” ■군대 같은 주방, 매너좋은 손님
르막숑 씨는 2000년부터 주한 프랑스 대사관 조리장으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2002년 프라자 호텔로 옮겨 지금까지 6년째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호텔서 처음 일할 때 느낀 것은 한국인들의 요리 지식이었다고 한다. “한국인들이 복잡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 요리를 잘 알고 있어서 놀랐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한국 손님들이 요리 지식만 많은 게 아니라 매너 또한 좋다고 했다. 로시 씨는 “먼저 일했던 태국과 대만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신사 중의 신사”라고 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로시 씨는 넉 달 전 한국에 처음 와서 주방 분위기에 먼저 놀랐다. 함께 일하게 된 한국인 요리사들이 마치 군대의 주방에서 일하듯 정확하고 빈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서로 말이 잘 안 통했지만, 아무리 바쁜 상황에서도 눈치 하나로 척척 움직이는 모습에 놀랐다. 쿠퍼 씨는 특이한 이력의 주방장이다. 보험 회사의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요리가 좋아서 과감히 사표를 냈고, 25살에 주방 막내를 시작해 유명 요리사가 됐다. 금융업에서 타이트한 조직 생활을 해 본 경험 덕에 손님 보는 눈이 밝다. “한국인은 손님이나 주방 요리사들이나 비슷합니다. 일 잘하고, 많이 압니다.” ■한국인 입맛이 자극적이라고?
한국이 아무리 세계화 됐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입맛은 외국인들과 많이 다를 터, 주방장들도 한국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쓸까. 그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저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 정통식으로 조리할 뿐”이라는 대답이다. 다만 로시 씨의 경우는 “마늘을 많이 넣어준다”고만 말했고, 쿠퍼 씨는 “한국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고수와 코코넛밀크 등을 쓰지 않는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 짜고 맵고 단 음식 등 일반적으로 자극이 강한 맛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국인 주방장들의 대답은 정반대다. 르막숑 씨는 “처음 호텔서 일할 때 평소 하던 대로 간을 맞췄을 뿐인데 손님들로부터 음식이 너무 짜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이후로는 최대한 싱겁게 요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티쉐(제과제빵 전문가)인 윌드 씨는 “내가 만드는 빵과 과자가 한국인 입맛에는 지나치게 달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유럽 본고장 식으로 계속 달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마법 같은 한국음식
일본에서는 이미 비빔밥이 햄버거와 맞먹는 패스트푸드로 성장했고, 중국과 홍콩은 드라마 ‘대장금’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 붐이 일고 있다. 외국인 주방장들이 보는 한국 음식은 어떨까. 로시씨는 한국 음식에 대해 묻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지 뭔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혹시 감자탕 아니냐”고 했더니 무릎을 치며 “감자탕, 소주 투게더~”라며 입맛을 다신다. 비디니 씨는 “삼계탕과 김치가 좋다”고 했다. 다만 음식점마다 김치 맛의 차이가 큰 게 불만족스런 점이다. 르막숑 씨는 와인의 나라 프랑스 출신답게 김치와 와인을 비교하며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마법 같은 음식”이라고 평했다. “3년 묵은 김치를 먹는 친구를 봤다”면서 “나는 아직 초보자라 ‘영(young) 김치’(갓 담근 김치)만 먹고있다”고 말했다. ■서울살이
외국인 주방장들은 대부분 호텔에서 제공한 아파트에서 산다. 체류비는 호텔 측이 부담하며 자녀가 있는 경우는 학비까지 제공한다. 총주방장 급의 연봉은 1억원 이상이며, 주방장 급은 1억 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많은 연봉을 받지만, 낯선 나라에서 살기가 쉽지만은 않다. 때문에 여가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일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비디니 씨는 매일이 바쁘다. 일이 끝나고 난 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관광을 한다. 이번 한국 근무가 아시아에서는 처음 일하는 것이라 궁금한 게 많다. 쿠퍼 씨는 “이태원보다는 인사동이 훨씬 좋다”고 했다. 여가 시간에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인사동 등에서 맥주를 마신다. 윌드 씨와 로시 씨는 남대문 시장 등을 구경하는 게 좋다고 했다. 르막숑 씨의 취미는 등산. “한국의 산세가 훌륭하다”는 그는 휴일마다 북한산, 관악산 등 서울 근교 산을 다니며 여가를 보낸다. 이들에게 한국은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나라다. 쿠퍼 씨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의 섬을 가보고 싶고, 벚꽃놀이를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르막숑 씨는 사찰에 관심이 생겼다. 다음 휴가 때는 템플 스테이를 해 볼 계획이다. 비디니 씨는 “한국에서 보다 많은 사람을 ‘안아보고’ 싶다”고 했다. 포옹하고 입맞추는 이탈리아 식 인사법으로 한국인과도 인사하고 싶다는 뜻이다. 마주치면 고개부터 숙이는 한국식 인사법은 여전히 낯설다. “먼저 다가가 포옹하고 입맞추기는 어려운 일이죠. 한국인들이 먼저 제게 이탈리아 식으로 인사해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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