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준비된 기술, 불안한 출발

올 연말과 내년 상반기 중으로 다양한 통신서비스가 선보일 계획이지만 업계의 이해타산이 얽혀 있고 정책적 조율도 원만치 않아 적지않은 혼선을 빚고 있다. 우선 1일부터 지상파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이 시작되지만 아직도 DMB 수신 겸용 휴대전화의 유통문제가 타협점을 찾지 못해 출발부터 난조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동통신사업자들은 지상파 DMB의 출범으로 기존 서비스 이용이 줄어들 것이므로 별도의 손실보전책이 없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위성 DMB와의 차별화를 위해 확고한 무료원칙을 세워놓고 있는 방송사들은 가입자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는 만큼 이통사들을 설득하기가 어렵고 전용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당장 서비스가 시작돼도 지난해 이미 개발해놓은 DMB 수신 겸용 휴대전화로는 지상파 DMB를 수신할 수 없고 그나마도 재방송 위주의 콘텐츠를 시청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지상파 DMB 기술종주국을 내다보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초기 서비스여서 불안한 출발이 아닐 수 없다. 일년 내내 영역다툼으로 지새고 있는 인터넷 기반의 IP TV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KT가 12월부터 시범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서자 방송위원회가 형사고발도 불사하겠다며 저지할 태세다. 정보통신부와 KT 측은 유선방송사업자(SO)의 경우 벌써 시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인터넷망을 이용한 IP TV를 통신사들이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방송위는 엄연한 방송이므로 허가를 받고 시작하든가 아니면 규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정통부와 방송위가 제각각 업계를 배경으로 힘겨루기에 나선 형국이다. 유럽과 일본에 이어 중국마저 본격적인 IP TV시대를 열겠다면서 서두르고 있는데 무려 999개나 되는 채널을 놓고도 아직 우리만 영역다툼으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새로운 미디어가 출범할 때마다 제때 결론을 내리지 못해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날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허가하는 데만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스카이라이프의 지상파방송을 재송신하는 데도 3년 이상의 시간을 소모했다. 또한 방송법에 위성 DMB를 추가하는 데도 적지않은 시간을 보낸 게 우리의 현실이다. 기술적 변화는 빠른데 정책결정이나 업계의 조율은 느리기만 해 단말기를 개발해놓거나 위성을 띄워놓고 놀리기 일쑤다. 정부의 IT839 전략에 따라 내년 4월에는 KT가 서울 지역부터 휴대인터넷(와이브로) 서비스를 시작하고 광대역 부호분할다중접속(WCDMA)에서 진화한 3.5세대 이동통신, 즉 고속다운링크패킷접속(HSDPA) 서비스도 내년 상반기 중 시작될 예정이다. 문제는 새로운 미디어가 나오거나 통신 서비스가 융합될 때마다 상대방 시장을 잠식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소비자는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지만 사업자는 한정된 시장을 나눌 수밖에 없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심지어는 음성전화와 인터넷 및 TV를 하나의 단말기에서 함께 이용하는 트리플 서비스가 이미 확산되고 있고 휴대전화의 통합결제로 이통사와 신용카드사 사이에도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시작된 모습이다. 물론 어떤 기술이 미래시장을 지배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정부도 업계의 불협화음을 신속하게 해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지고 단말기 융합현상이 가속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 이상 허송세월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일의 성장 엔진 발굴은 바로 오늘의 정책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통신과 방송을 아우를 수 있는 혜안과 결단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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