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살리겠다고 말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밝힘혀 금융시장이 환호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1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전미경제연구소 주최 콘퍼런스에서 양적완화 출구전략과 관련한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는 지난달 18~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매월 850억달러의 미 국채와 모기지채권을 매입하는 양적완화의 출구전략 스케줄을 제시해 시장을 요동치게 했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높은 실업률, 낮은 인플레이션, 제한적인 재정정책 등을 거론하며 “미국 경제에는 상당한 수준의 ‘경기확장적 통화정책(accommodative monetary policy)’이 당분간 필요하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그는 이어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진 후에도 상당 기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적완화에 대해서는 채권매입이 단기적으로 경제에 성장 모멘텀을 제공한다며 아직 더 가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금융시장은 그의 발언을 양적완화가 이른 시일 내에 종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0년물 미 국채금리는 그의 발언 이후 2.58%로 0.04%포인트 하락했다. 이번주 초 10년물 국채금리는 2.78%까지 치솟으며 3% 돌파 가능성을 높였었다.
11일 코스피지수도 전일비 2.93% 급등한 1,877.6으로 마감했다. 또 상하이종합지수가 3.23% 이상 급등하고 인도네시아 증시가 2.8%, 홍콩이 2.55% 오르는 등 아시아 증시가 대부분 상승했다. 달러는 약세로 반전됐다. 주요6개국 통화 바스켓으로 산정되는 달러지수는 버냉키 발언 이후 1.4% 하락한 83.435를 기록했다.
특히 이날 발표된 미국의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예상보다 2만여건 많은 36만건을 기록하고 수입물가지수 상승률도 전망치를 밑돌면서 양적완화 유지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이에 11일 뉴욕 증시 다우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나스닥지수는 일제히 1% 가까운 오름세로 장을 시작했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지난달 FOMC 회의록 공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회의록에서는 과반수에 가까운 위원들이 고용지표가 추가로 개선될 경우 양적완화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의록은 19명의 위원들 가운데 ‘많은(many) 위원’이 채권매입 규모 혹은 사들이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는 4월 회의록에서 사용된 ‘상당수(a number of) 위원’이라는 표현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조기 출구전략 쪽으로 견해가 더 기울었음을 시사한다.
다만 양적완화 축소를 지지하는 위원들 대부분은 고용시장 전망의 추가 개선을 전제로 했고 ‘일부(several)’만이 당장 자산매입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들은 회의록 발언들과 관련, 출구전략에 대한 연준 내 공감대는 높아졌지만 여전히 언제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크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풀이했다. AP는 이와 관련해 “FOMC 위원 간 견해차가 이전보다 확연히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시장이 회의록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시장이 하품을 했다”고 표현했다.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양적완화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FOMC 위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지만 버냉키 의장을 비롯해 재닛 옐런 부의장,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등 연준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크게 미치는 인사들은 여전히 확장적 통화정책을 지지하고 양적완화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오는 17∼18일 미 상하원 청문회에 참석하며 30∼31일에는 올 들어 다섯번째 FOMC 회동이 예정돼 있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이 당분간 버냉키의 입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