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증시가 ‘지수 1,300포인트 시대’를 열 수 있었던 데는 기관의 힘이 컸다. 기관은 개인과 외국인의 대규모 매물을 받아내면서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외국인의 주식 매수 여부에 따라 증시의 오르내림이 정해졌던 예전과는 180도 달라진 것으로, 그만큼 기관의 영향력이 막강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2005년을 기점으로 한국증시 방향의 키는 외국인에서 기관의 손으로 넘어갔으며, 내년에는 이 같은 양상이 더욱 고착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일에도 기관은 854억원을 순매수하며 1,150여억원어치를 순매도한 외국인의 매물을 받아내며 코스피지수를 1,140포인트 위로 올려놓았다. 종가는 1,141포인트. ◇기관, 증시 핵심주체로 급부상= 연초 이후 기관은 7조원이 넘는 주식을 순수하게 사들였다.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7조8,999억원, 2조7,124억원 순매도를 기록했지만 지수는 연초 893.71포인트에서 1,341포인트로 50% 이상 올랐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았는데도 기관의 매수세에 힘입어 주가가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같이 기관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배경에는 개인들이 직접투자를 자제하는 대신 펀드 등 금융상품을 통한 간접투자에 나선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식형 펀드 잔고는 16일 현재 24조4,350억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16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황금단 삼성증권 연구원은 “개인들이 직접투자 보다 간접투자를 선호하는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증시 수급의 주도권이 기관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매도는 더욱 거세질 듯= 반면 외국인은 올해 2조원 이상을 순매도하면서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이 저평가됐을 때부터 꾸준히 사들였기 때문에 지수가 1,300포인트가 넘은 현 상황에서는 매도 욕구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원종혁 SK증권 연구원은 “아시아 증시에서 외국인들의 비중이 평균 30%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의 40% 수준은 여전히 높은 상태”라면서 “추가 매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에 외국인들은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수준의 매도에 나설 것”이라면서 “연간 10조~15조원 가량을 팔면서 외국인 비중도 1.5~2%포인트 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 기관화 장세 더 강화된다= 내년 기관의 증시 영향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 12월부터 퇴직연금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중장기적인 기관 수급이 마련된데다가, 다양한 금융상품에 대한 개인들의 수요 또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외국인의 대규모 매물은 기관이 충분히 받아낼 수 있다”면서 “앞으로 한국 주식시장에서 수요의 핵심은 기관 투자자이기 때문에 기관의 매매 패턴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들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최근 기관들은 세계 경기의 펀더멘털 개선과 자본시장 통합법을 염두에 두고 전기ㆍ전자업종 및 손해보험업종 매수를 늘리는가 하면, 환율 강세 수혜주인 한국전력을 매수하는 등 경기와 제도변화를 적절히 반영하는 매매전략을 펼치고 있다”면서 “내년에도 기관 수급을 보면 증시의 맥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