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빛을 내며 움직이는 텍스트… "살아있는 책"

강애란 개인전 갤러리시몬서


시인의 얼굴이 표지를 꽉 채운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ㆍ1809~1849)의 책을 집어 든다. 은은한 푸른 빛을 내뿜는 책을 전시장 한쪽 벽 선반 위에 올려놓는다. 순간 한 남성의 낮은 목소리가 "Take this kiss upon the brow(그대 이마에 키스를 받으라)"라고 읊조린다. 포의 대표시 'A Dream within a dream(꿈 속의 꿈)'이다. 선반에 놓인 책의 센서가 작동한 것인데, 어두운 전시장 벽면에는 크기와 색이 다른 시어들이 반짝이며 펼쳐진다. 전시장 가운데 설치된 책처럼 좁고 긴 형태의 거울방으로 들어가면 시(詩)를 읽어주는 책 속에 몸을 담은 듯하다. 책을 소재로 작업하는 미디어아티스트 강애란(51ㆍ이화여대 교수)의 신작 '빛을 발하는 시(Luminous Poem)'이다. 28일부터 통의동 시몬갤러리에서 시작하는 그의 개인전에 선보일 관객 참여형 작품이다. LED 조명과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이른바 '디지털 북'은 총 10권. 존 밀턴, 랄프 에머슨 같은 시인들의 책이며 각각 서로 다른 음성과 영상을 펼쳐 보인다. "그저 책장에 꽂힌 책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비물질적인 공간'으로서 책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닌 '인식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죠. 시간을 함축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책의 진짜 의미를 보여주고 책의 무궁무진한 내용을 가시화하는 것이 바로 제 '디지털 북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그림과 조명을 결합한 회화 신작이 눈길을 끈다. 쌓여있는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와 툴루즈 로트렉의 화집 아래로 조명이 빛을 내며 글자들이 흘러간다. 작가는 "움직이는 텍스트를 통해 책이 '나는 살아있다', '책은 공간이며 시간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이 같은 탐구로 붓과 캔버스 대신 책을 주제로 한 디지털작업을 1997년부터 전개하고 있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이미지로 보여준다. 동시에 작품의 진화과정은 과학기술의 발달까지 반영한다. 책이 발하는 빛은 LED 조명으로, 전기줄로 공급하던 전원은 충전식 배터리로 대체했다. 전시는 5월29일까지. (02)72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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