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 13일] <1522> 헨리 캐리


'미국 최초의 전업(專業) 경제학자', 링컨 대통령의 수석 경제보좌관, 누구보다 오랫동안 미국에 영향을 미쳤으나 망각된 인물…. 헨리 캐리(Henry Carey)의 면면이다. 왜 잊혀졌을까. 캐리가 주창한 '적극적인 보호무역'이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 경제의 흐름과 맞지 않은 탓이다. 정식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28세인 1822년부터 경제학과 임금ㆍ이자ㆍ화폐ㆍ노예제도ㆍ저작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문을 발표해 이름을 날린 그의 지식 배경은 두 가지. 벤저민 프랭크린이 설립한 '필라델피아 화재보험'에 근무한 금융실무 경험과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나섰던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인 부친의 출판사업을 거들며 독학으로 익힌 정치경제학이다. 캐리의 주 공격 대상은 '영국 시스템'. 영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있는 중개업자의 배만 불릴 뿐 모두를 가난하게 만든다'고 역설한 대목은 카를 마르크스의 찬사를 받았다. 캐리는 영국이 아일랜드와 인도를 착취했듯이 독립한 미국마저 금융과 무역을 통해 지배하고 있다며 대안으로 강력한 관세와 보호무역을 내세웠다. 때맞춰 등장한 미국이 영국과 차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미국 시스템'론을 신봉했던 링컨은 캐리 보좌관의 조언대로 취임 이후 관세를 두 배 올리고 영국계 자본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불태환지폐인 '그린 백'을 찍어냈다. 2차대전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미국 관세제도에도 캐리의 흔적이 배어 있다. 개항 직후 일본이 수입한 자본주의도 캐리이즘이다. 캐리 사망(1879년 10월13일) 이후 130년. '바르고 근면한 자가 게으르고 방탕한 자를 부양하며 세계의 생산자가 특정국 상인에게 희생되고 있다'는 그의 성찰은 '게으른 자'와 '특정국 상인'을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꾼다면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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