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민간 자율로' 동반성장 유도에 초점… 대기업엔 큰 압박 될듯

■29일 발표 대·중기 상생대책 '윤곽'<br>상생 업종·품목 지정 법적 구속력 없지만<br> 침해사실 대외 공표땐 사회·윤리적으로 부담<br>조정 신청권 만으론 납품단가 현실화 어려워<br>조합에 교섭권 부여등 정치권 추가 논의할듯

17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대^중기 동반성장 조찬간담회’ 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정병철(왼쪽 두번째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김동선 중소기업청장, 정준양포스코 회장 등 참석자들은 이날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를 비롯한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청




서울에서 막걸리 병마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P 사장은 지난 7월 중소기업중앙회 사업조정팀의 문을 두드렸다. 대기업 계열사인 S사가 뒤늦게 막걸리 시장에 진입해 핵심 인력까지 스카우트하며 공격적인 영업을 펼쳐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P 사장은 "브랜드력과 시장 인지도 면에서 밀리다 보니 거래선을 속속 빼앗기고 있다"며 "연매출 25억원 규모의 영세업체로서는 막강한 자금력과 영업망ㆍ인지도를 갖춘 S사의 공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대ㆍ중기 상생대책'에 중소기업형 업종ㆍ품목을 지정하고 개별 조합에 납품단가 협상권한을 부여한 것은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시장 진입이나 불공정 거래행위를 일정 수준에서 제한해 산업계의 동반성장을 유도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전면에 나서 무리하게 대기업의 사업영역을 규제하는 부담을 피하면서 전적으로 민간 자율에 맡겨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상생의 큰 틀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상생을 법과 제도로 규정하기보다는 기업문화와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시장경제원리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중소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인 절충형 해법을 선택한 셈이다. 이 같은 상생대책은 일단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공인된 중소기업 영역을 침해하거나 상생노력에 소홀하다는 사실이 대외적으로 공표될 경우 해당 대기업이 사회적ㆍ윤리적으로 갖는 부담은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대기업의 사업진출과 마케팅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이 중소기업중앙회에 신청한 사업조정 건수는 올 들어 8월 말 현재 96건에 달한다. 2007년 고유업종제도 전면 폐지로 대기업들은 자판기 운영부터 자동차 정비, 두부 제조, 사무용 자재유통, 동네형 슈퍼마켓 등 시장이 있는 곳이라면 거침없이 진출한 상태다. 중소기업 영역에 적합한 대상 업종 및 품목 지정은 앞으로 업계 및 전문가의 논의를 거쳐 최종 선정되겠지만 과거 고유업종 가운데 대기업 진출 가능성이 높아 뒤늦게 해제된 업종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256개 고유업종 가운데 마지막 3년 동안 해제된 45개 업종으로는 타월, 고무장갑, 거울, 플라스틱 용기, 재생 타이어, 쇠못, 골판지상자, 아연말, 도금업, 우산 등이 있다. 대상 분야 선정과정에서 터져나올 대기업의 반발이나 객관성 확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과제로 남아 있다. 앞으로 본격 활동에 들어갈 동반성장위원회(가칭)의 구체적인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위원회는 일단 대기업ㆍ중소기업 관계자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돼 대기업별 상생지수 발표 등의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그룹별로 산정ㆍ발표하게 될 상생지수 역시 강제성이나 구속력이 있는 수단은 아니지만 지수가 낮은 그룹은 사회적 비난과 정부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상생 유도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계의 최대 현안인 납품단가 현실화다. "한 번 내려간 납품가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한 휴대폰 부품업체 사장의 말처럼 원자재가 상승을 고스란히 중소기업에 떠넘기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관행은 이번 '상생' 이슈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원자재값 폭등에도 불구하고 약 45%에 육박하는 중소업체들은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납품가에 반영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도입한 납품단가조정협의제는 하청업체인 개별 중소기업이 대기업 측에 조정협의를 신청하고 협의를 벌이도록 돼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이번 대책을 통해 일단 납품단가조정협의 신청권이 업종별 단체인 조합에 부여될 경우 적어도 조합을 통해 대기업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올 여지는 생기게 된다. 지금까지는 조정신청 기업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중소기업들이 신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기업계는 납품단가연동제를 도입하거나 적어도 조합이나 협의회에 교섭권까지 넘겨주지 않는다면 납품단가 현실화는 어렵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는데다 개별 대기업들도 조합을 파트너로 삼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정부 대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 당장 대기업으로부터 거래 단절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청권 부여는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중소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합에 신청권을 준다는 것만으로는 기존 하도급 관행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최근의 상생 분위기를 감안해 정치권의 입법과정을 통해 추가로 보완하는 작업을 거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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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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