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대북 확성기 방송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면서 그동안 우리 자유의 소리 방송을 들어준 인민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4년 6월14일 오후11시50분 155마일 군사분계선(MDL). 고성능 확성기에서 나오는 남성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남북이 장성급군사회담 후속합의서를 통해 MDL 지역에서의 선전활동을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이날 우리 군 당국은 마지막 대북방송을 내보냈다.


남북 간 확성기를 이용한 비무장지대 선전전은 1962년 시작했다. 북은 우리 정권을 미제(미국 제국주의자)의 앞잡이 운운했고 우리는 북 정권을 세습이라 비난하는 등 상호 체제비방이 주된 내용이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에는 방송시간과 횟수가 급격히 줄었고 내용도 북은 자신의 체제나 지도자 홍보로, 우리는 국내외 뉴스와 노래 중심으로 순화됐다. 사실 남북의 확성기 방송전은 이미 1990년대에 승부가 났다. 낡은 북의 스피커는 가래 섞인 소리를 뱉어내 가장 간단한 '위대한 지도자 동지' 부분도 온 신경을 집중해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확성기의 성능은 출력을 최대로 올리면 야간에 24km, 주간에는 10여km 떨어진 곳에서도 들리는 수준이었다. 우리 방송이 밤이면 개성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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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확성기 방송이 10일 재개됐다. 북의 목함지뢰 공격에 대해 우리 군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한 후 나온 첫 조치다. 확성기는 2004년 완전 철거됐다가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조치로 MDL 일대 11곳에 다시 설치됐다. 이후 실제 방송은 북한의 태도를 봐가며 시행하기로 결정한 채 보류했다가 이번에 재개한 것이다. "혹독한 대가가 고작 확성기냐"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외부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북에서 대북방송은 북 인민의 사상적 기반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비대칭전력으로 평가된다. 북은 더 혹독한 대가를 지불 받기 전에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게 순리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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