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24일] 산업과 은행, 그리고 M&A

인수합병(M&A)은 자본과 전략으로 빚어내는 기업 경영의 결정체다. 새로운 성장동력과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매물을 기다리며 전열을 가다듬는다. ‘배가 고플 때 장을 보지 말라’는 M&A 원칙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수천억, 수조원이 투자되는 ‘빅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급하지 말아야 하며 거듭되는 ‘피 말리는’ 수 싸움에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신중을 기해야 함은 기업을 매각하는 주체에도 적용된다. 기업 가치를 높여 보다 좋은 가격을 얻어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M&A과정에서 주인이 바뀌는 기업의 경쟁력도 유지시켜야 한다. 인수 후보들이 최적의 전략을 짤 수 있는 ‘판’을 짜주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과 현대건설ㆍ하이닉스와 같은 대형 매물 매각의 키를 쥐고 있는 은행권의 최근 모습에는 이런 신중함이 없는 듯 해 안타깝다. 오직 은행의 이익에만 매몰돼 매각을 앞둔 기업은 물론 M&A를 준비하는 인수 후보들을 고려하는 태도는 찾기 힘들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외환은행은 현대건설 매각을 시작해야 한다며 다른 주주 은행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현대건설 매각에 구사주 문제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다. 외환은행의 기세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산업은행은 갑자기 대우조선해양 매각작업 개시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얼마 전에는 매각 주간사까지 선정했다. 이런 와중에 우리은행은 느닷없이 “하이닉스 우선 매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장 관계자들은 우리은행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은행들의 기 싸움에 사활을 건 ‘베팅’을 앞둔 인수 후보들의 피로감은 더해진다. M&A를 준비하고 있는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서로 먼저 팔겠다는 은행들 간의 다툼을 지켜보는 것도 이제는 지겹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대우조선해양이 먼저라는 산업은행의 ‘굳은 의지’ 덕분에 M&A 순서를 둘러싼 은행권의 교통정리는 간신히 된 듯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은행들이 새 주인을 찾아줘야 할 기업들이 줄줄이 쌓여 있다. 주주인 만큼 더 비싼 값에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하지만 ‘공익성’이 강조되는 곳 또한 은행인 만큼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함께 고민하며 M&A 시장의 한 주체가 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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