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손톱 밑 가시는 빼셨습니까

규제개혁 현안 부상 불구 개별적 과제해결 머물러

일회성 아닌 시스템적 접근을


특수윤활유를 생산하는 중견기업 A사는 지난 2012년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부지 5만㎡를 매입했다. 현재의 생산시설로는 주문을 다 소화할 수가 없어 제2의 공장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자체와 공장 설립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해당 지자체는 공장을 지으려면 도로를 내고 아스팔트를 깐 뒤 기부채납을 할 것을 요구했다. 공장을 지으면 일자리가 늘어나 지역 경제도 살아나기 때문에 지자체도 당연히 환영할 것으로 생각했던 A사로서는 뜻밖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A사는 기부채납을 하면 사업성이 떨어져 공장을 세우기가 어렵다며 담당 공무원을 설득했으나 법 조문을 내세운 지자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회사는 국내에서 공장 설립하는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A사 관계자는 "미국만 하더라도 공장 부지는 물론이고 세제혜택까지 줄 테니 투자만 해달라고 하는데 우리는 작은 공장 하나 늘리는데도 제약이 너무 많다"며 "정부에서는 규제개혁 한다고 요란스러운데 현장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사의 사례는 우리나라 규제개혁의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규제개혁 과정을 보면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부터 나서 의욕적으로 개혁 방안을 쏟아내다가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되는 일이 되풀이된다. 이명박 정부 때만 하더라도 집권 초기 규제의 전봇대를 뽑겠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저런 정책보다 손톱 끝에 박힌 가시 하나 빼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하면서 기업의 애로사항 해소에 나서고는 있지만 정권의 절반이 지난 지금도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이는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430개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59.3%가 아직 규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고 중소기업옴부즈만실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도 불만족스럽다는 응답(36.9%)이 만족한다는 대답(13.4%)보다 월등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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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왜 규제개혁이 잘 안되는 것일까. 규제를 만들기는 쉽지만 없애기는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규제개혁위원회가 마련돼 있고 각 부처에도 자체 규제심사위원회가 있어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규제에 대해 심사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해당 규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되면서 언론의 문제 제기가 있거나 이해관계자들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만 사안별로 잠깐 들여다볼 뿐이고 시스템적 접근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권마다 규제개혁이 질보다는 양 위주로 이뤄지면서 핵심 규제는 놓아둔 채 자잘한 규제 몇 건만 터치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나마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정부의 의지가 약해지면 정권 초 요란했던 청사진의 빛이 바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중국의 경기 침체와 미국이 금리 인상 시점이 맞물리면서 지금 우리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은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진정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제의 활력을 높이려면 의욕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체계적으로 규제개혁이 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국 정부가 도입해 효과를 보고 있는 '규제비용총량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규제를 신설할 때 그에 상응하는 비용만큼 기존 규제를 폐지하도록 하면 결국은 규제를 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갈수록 경제 여건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성장률을 높여 일자리를 만들어내려면 기업에 투자하라고 압박만 할 것이 아니라 투자를 방해하는 규제의 사슬을 시스템적으로 없애줄 수 있는 장치부터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오철수 성장기업부장(부국장)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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