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외환시장 초미의 관심사는 중국 위앤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의 고평가 논란이다. 미국은 달러화가 가치가 떨어졌으니 싸구려 대접하라고 하소연하고 있는데 아시아국들은 여전히 달러화가 매력적이라며 점점 더 많은 양을 창고에 재 두고 있다.
겉으로 보면 달러화는 언제 급락할지 모른 채 안절부절하고 있고 아시아국은 자국 통화의 시장 가치 상승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를 사들이는 `여유`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보면 달러화의 세계 시장 지배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시장 경제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면 수요가 줄어들어 시장 가격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통화`라는 상품은 이 같은 자본주의 기본 명제가 통하지 않는다. 통화는 세계 일등만이 세계 시장을 거머쥐는 이른바`승자독식(The winner takes it all)“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미국은 종이 값만 들여 달러화를 찍어대고 있고 아시아국은 상품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그 달러화로 바꾸고 있다.
아시아국들은 자국 경제의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해 달러 사재기 이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이와 관련 특집판에서 “지난 97년 외환위기가 터져 나라 경제가 거덜난 아시아국들이 이제는 편집증적으로 달러화를 쌓아놓고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여타 아시아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의 경우 자국 통화 가치 절하를 통한 수출 확대 성격이 짙다. 어찌 됐든 아시아국은 전체적으로 1조5000억달러를 중앙은행 금고에 쌓아놓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달러화를 사들이고 있다. 미 국채의 40%를 아시아국이 갖고 있다고 한다. 사상 최대의 무역 및 재정 적자를 아시아국들이 보전해주고 있는 셈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겉으로는 아시아 환율 정책을 맹공격하면서도 이들 국가의 외환시장 개입을 내심 반기고 있는 이유다.
지난 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달러화로 무장한 미국 금융 자본은 아시아 자산을 헐 값에 사들이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제는 달러화로 무장한 아시아국에게 군비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자국 경제 상황에 따라 통화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 미국과 달리 `최후의 안전판`으로 달러화를 재놓아야 하는 주변 통화국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병관 기자(국제부) come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