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4월 14일] <1670> J S 모건


'전쟁상인' '영국자본의 앞잡이' '월가의 구세주'. 미국의 거대 금융그룹 모건하우스에 대한 평가다. 미국이 영국에 뒤처졌던 19세기 중반까지 모건하우스는 영국자본을 위해 미국인들의 호주머니를 턴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1ㆍ2차 대전에서는 유럽 각국 전쟁물자 구매를 대행해 '죽음을 판다'는 소리도 들었다. 극찬 받은 적도 있다. 1893년과 1907년 미국의 공황과 시장붕괴 상황에서 돈을 무한정 공급해 안정을 이뤄낸 직후만큼은 모건하우스에 대한 칭송이 쏟아졌다. 중앙은행 역할까지 맡았던 미국 최대의 금융그룹을 일궈낸 주인공으로 대부분은 이 사람을 기억한다. J P 모건. 정작 모건하우스를 일으켜 세운 주역은 따로 있다.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Junius Spancer Morgan). J P 모건의 아버지다. J S 모건은 출생(1813년 4월14일)의 심지뽑기부터 운이 좋았다. 애트나보험을 세운 부친 조지프로부터 36세에 받은 상속금도 100만달러를 넘었다. 미국의 부호에서 세계적인 부호로 성장한 계기는 런던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은행가 피바디와의 합작. 결정적으로 보불전쟁이 발생했을 때 돈이 궁했던 프랑스에 대한 대출과 채권매입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세계 1ㆍ2위 은행을 다투던 영국의 로스차일드, 베어링브러더스와 견줄 수 있는 대형 은행으로 뿌리내렸다. 1890년 사망시에는 유산 1,230만달러를 남겼다. 명저 '금융제국 J P 모건'을 저술한 금융분석가 론 처노는 J S 모건과 모건하우스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조직은 한 인간의 긴 그림자.' 모건하우스의 성장에 J S 모건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평가를 받을 만한 기업인과 영속적으로 발전하는 기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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