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월드파노라마] 세계는 지금 '신 M&A 열풍'

양자간 합병이라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3각 합병이나 2~3차에 걸친 연쇄합병이 늘고 있고 상대기업을 강제로 합치는 적대적 인수합병도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여기에 국경을 초월한 국가간 합병, 수백억달러짜리 메가딜, 서로 다른 업종간의 합병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짝짓기가 선보이고 있다. 이같은 기업들의 덩치 키우기는 연초 단일통화권을 형성한 유럽권에서 불붙기 시작해 그동안 인수합병에 소극적이던 일본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도 60여년만에 그동안 성역으로 남아 있던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업종간 진입장벽을 허무는 등 금융빅뱅을 위한 정지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촉발된 이같은 기업짝짓기를 통한 독점화현상이 세계경제지도를 바꾸고 있다. ◆기업분야= 자고나면 기록이 깨지는 초대형 인수합병의 행진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 통신업체 MCI월드컴이 스프린트를 인수하며 제시한 금액은 무려 1,150억달러. 한화로 약 140조원이다. 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도 훨씬 많은 액수다. 이밖에도 지난 5월 이탈리아의 통신업체 올리베티가 이나라 국영통신업체 텔레콤이탈리아(TI)를 650억달러에 인수했는가 하면, 6월에 미국 4대 장거리전화회사인 퀘스트커뮤니케이션은 550억달러에 유에스웨스트와 프론티어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JP모건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무려 2,560억달러 규모의 미국 기업이 외국업체에 팔렸다. 또 미국업체가 외국 기업을 인수한 금액도 총 1,219억달러에 달했다. 왜 이같은 대형 M&A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덩치키우기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몸집을 부풀리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이 대표적인 예다. 올들어 포드가 볼보승용차를, 프랑스의 르노가 닛산을 인수키로 한 것도 독자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때문이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회장은 최근 비즈니스위크지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글로벌 메이커로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연간 500만대 이상은 팔아야 한다』며 『2000년대에는 5~6개 회사만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분야의 업체를 인수해 수직계열화를 이룰 필요성도 대형 M&A를 부추기고 있다. 통신업체가 대표적인 예다. 유·무선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시장 추세에 맞춰 관련 업체를 인수하는 것. 장거리 전화회사인 AT&T는 지난해부터 모두 1,110억달러를 쏟아부어 케이블TV 업체를 잇따라 인수했다. 전화뿐만 아니라 인터넷시장까지 장악,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AT&T는 지난 4월 일본의 NTT,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 등과 자본제휴를 맺어 아예 세계 차원의 통합서비스를 꾀하고 있다. 이밖에도 첨단기술 확보 세계 무대로의 시장 확대 각국 정부의 M&A에 대한 규제완화 등도 M&A바람을 증폭시키는 이유가 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의 「기업합병자문위원회」는 지난 5월 『기업합병관련 법규를 강화하지 않는 대신 독점규제법은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륙을 가로지르는 메머드급 회사들이 잇따라 탄생하면서 공정한 시장경쟁을 해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MCI월드컴의 스프린트 인수에 대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독점규제 저촉여부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금융분야= 금융기관간 이합집산이 연초 통화통합을 이룬 유럽지역을 선두로 일본, 미국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럽국가 중 M&A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프랑스가 파리국립은행(BNP)의 소시에테 제너랄(SG)과 파리바에 대한 적대적 M&A 선언으로 서막을 장식했다. BNP는 특히 합병에 부정적인 SG에 대해 끝까지 적대적인 M&A를 추진, 진통을 겪기도 했다. 결국 BNP는 파리바의 지분 65%를 확보해 경영권을 인수했지만 SG의 지분은 31.8% 확보하는데 그쳐 3각합병은 미완으로 일단락됐다. 이에 앞서 독일은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가 지난해 영국 모간 그렌펠과 미국 뱅커스 트러스트를 인수, 세계 최대은행을 탄생시켰다. 이같은 도이체방크의 몸집불리기에 위협을 느껴 2위인 히포 페어라인스방크와 3위 드레스너방크가 전략적인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도이체방크가 다시 4위 코메르츠방크와 손을 잡거나 히포-드레스너에 대한 적대적 합병을 검토하는 등 인수전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통화통합으로 유럽이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함에 따라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타 유럽국가들에서도 이같은 금융기관 대형화 붐이 확산되는 추세다. 여기에 장기불황으로 그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까지 최근 구조조정차원에서 금융기관간 통폐합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8월의 다이이치간교(第一勸業), 후지(富士), 니혼코교(日本興業) 등 3개 은행의 합병은 이러한 빅뱅의 신호탄이다. 한꺼번에 3개 은행이 합병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단숨에 자산규모 1조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은행이 탄생하게 됐다. 이어 10월에는 스미토모(住友)은행과 사쿠라은행, 도카이(東海)은행과 아사히은행이 각각 합병을 선언하는 등 도쿄-미쓰비시은행의 합병 이후 한동안 주춤하던 은행간 이합집산이 다시 급류를 타고 있다. 일본 금융당국은 현재 17개인 주요 은행 수를 향후 4~5개정도로 줄일 방침으로 있어 일본은행들의 짝짓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유럽과 일본에 이어 미국도 최근 금융권간 상호진출을 막아 왔던 글래스 스티걸법을 폐지함에 따라 본격적인 금융빅뱅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증권·보험사인 트래블러스그룹을 합병, 사실상 유니버셜뱅킹의 지위를 선점한 시티코프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또 증권사인 메릴린치도 숙원사업인 은행업 진출을 위해 체이스 맨해튼 등 거대은행과의 합병을 저울질 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초대형 금융기관의 탄생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형주기자 LHJ303@SED.CO.KR 백재현기자 JHYU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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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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