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비통한 심경으로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이 불법자금을 받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잘못된 일입니다.
법과 원칙에 평생을 바쳐온 저로서는 자책감에 참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작년 대선 직후 저는 정치를 떠났습니다.
정치를 떠난 제가 오늘 국민 앞에 다시 선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선 당시의 사무총장과 현 대표가 이미 국민 여러분깨 사죄의 말씀을 올리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허물,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정치개혁을 주장해왔고 깨끗한 정치를 표방해왔던 저로서는 입이 열개라 해도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위선적인 행동이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동안 이 못난 저를 사랑하고 아껴주신 국민 여러분께, 그래도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걸었던 국민 여러분께, 무릎을 꿇고 사죄드립니다.
사랑하는 한나라당 당원 동지 여러분!
대선패배로 이미 죄인이 된 제가 동지 여러분의 가슴에 또 못을 박는 것 같아 제 가슴이 미어집니다.
여러분의 허탈과 분노를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지금 우리 당은 여태 겪어보지 못했던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는 오직 용기와 단합만이 우리를 구할 것입니다.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을 것이 아니라 서로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일이 당이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지금 대선 당시 사무총장과 재정위원장, 그리고 재정국장 등 당직자들이 검찰의 조사를 받거나 받을 예정입니다.
당을 위해 심부름한 죄밖에 없는 재정국장의 구속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을 보고 저는 참담한 심정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분들은 사리사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직자로서 당과 대선승리를 위해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앞장서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당원 여러분, 저를 꾸짖으시더라도 이들에게는 여러분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합니다. 잘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책임은 이들보다 대통령 후보였던 저에게 있습니다.
감옥에 가더라도 제가 가야 마땅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인생을 돌이켜 보면 저 어찌 개인적인 소회가 없겠습니까?
저는 평생을 鶴과 같은 삶을 살기를 동경했습니다.
정치에 들어가서도 대통령이 된다면 법과 원칙이 바로 선 나라,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진흙탕과 같은 정치의 마당에서 저의 이런 꿈은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자리에 선 이 시점에, 저는 지금까지의 제 삶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었던가, 참담한 심정으로 되돌아 봅니다.
저에게 삶의 꿈을, 삶의 희망을 걸었던 많은 국민들에게 좌절과 실망을 안겨드린 제가 어떻게 해야 속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충심으로 사죄 드립니다.
2003년 10월 30일 이회창
<최석영기자 sycho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