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경기부양을 위해 지속해왔던 양적완화(QE)에 대해 연내 규모 축소, 내년 중반 종료라는 구체적인 출구전략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미국 경제의 하방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기준금리에 대해서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언급해 점진적인 출구전략을 펼칠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급속한 출구전략을 펼칠 경우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이 받을 충격을 감안한 것이다.
1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버냉키 의장은 "재정정책 악재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은 향후 2%의 정책목표에 근접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준도 이날 공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3~2.6%로 예상, 지난 3월의 2.3~2.8%보다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내년 전망치는 2.9~3.4%에서 3.0~3.5%로 높였다. 올해 실업률 전망치는 종전 7.3~7.5%에서 7.2~7.3%로, 내년 전망치는 6.7~7.0%에서 6.5~6.8%로 낮췄다. 연준은 성명서에서 "경제전망과 노동시장에 대한 하방 리스크가 지난해 가을 이후 축소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제거하더라도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양적완화 정책 종료의 근거가 된다. 버냉키 의장은 "양적완화를 축소한다고 해서 경제회복세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양적완화를 더 길게 끌고 갈 경우 자산 버블 등의 부작용이 긍정적인 효과를 상쇄할 수도 있음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3차 양적완화(QE3)를 실시한 후 연준의 자산은 2조8,000억달러에서 3조4,000억달러로 불어났다. 현재 속도로 자산매입을 지속하게 되면 올해 말 연준의 자산규모는 4조달러에 육박하게 된다. 연준이 돈을 시중에 풀고 있지만 대출 등의 경제활동으로 연결되지 않고 주식 등의 가격상승만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론이 제기돼온 상태다.
버냉키 의장은 부양책의 또 다른 한 축인 '제로금리'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점진적인 출구전략을 통해 충격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버냉키 의장은 "FOMC는 자산매입 종료와 실제 기준금리 인상시기 사이의 시간차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금리인상은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라며 "실제 금리인상이 이뤄지더라도 점진적으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이 금리인상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 실업률은 6.5%로 이는 연준의 내년 실업률 전망치를 밑돈다. 현 추세가 이어지면 오는 2015년에 가서야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의 정책전환이 미국 경제와 시장에 어느 정도 충격을 미칠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공감대가 확고하다면 일시적인 주가하락과 금리상승이 불가피하겠지만 충격은 단기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양적완화 축소가 주택시장 등 실물경제의 회복세를 둔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금융시장은 예상을 뛰어넘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월가는 버냉키 의장과 연준이 양적완화에 대한 시그널을 확실하게 주면서도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