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브라보 MY CAR] <1> 마이클 베터 슈투트가르트스포츠카 사장

'클릭 페스티벌'서 생애 첫 레이스 "짜릿한 경험이었죠"<br>질주본능 생각나면 태백경주장 찾고 제주도 해안도로 몇시간씩 달리기도<br>주중엔 출퇴근용·주말엔 경주용 포르쉐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첫 경험이었지만 정말 짜릿했습니다.” 마이클 베터(사진) 슈투트가르트스포츠카(포르쉐 수입사) 사장은 지난 5월15일 생애 첫 레이스를 가졌다. 경기도 용인에서 현대자동차가 주관한 ‘클릭 페스티벌’ 레이스. “68명이 참가한 가운데 60등을 했다”는 그는 “포르쉐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는데 이 숫자에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60등을 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스포츠카의 사장, 그것도 자동차의 본고장인 독일 아우토반에 길들여져 있을 법한 ‘선수’가 한국인들과 자동차 주행장 15바퀴를 도는 경기에서 꼴찌에 가까운 기록을 거뒀다니. 2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초입부터 베터 사장의 ‘유머러스한’ 면모를 일찌감치 알아봤다. 최근 강남 포르쉐 매장에서 만난 베터 사장은 “22년간 핸들을 잡아왔지만 여전히 안전하고 정확한 드라이빙 테크닉을 늘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질주 본능이 깨어날 때면 무작정 시속 300㎞를 마음껏 내지를 수 있는 강원도 태백경주장을 찾는단다. 포르쉐가 주문을 넣어 만든 아디다스 드라이빙 슈즈를 신고 힙합ㆍ발라드ㆍ재즈 등 각종 음악 CD를 챙겨 오프로드 여행을 훌쩍 떠난다. 갇힌 틀마저도 깨고 싶다면 서울서 목포까지 포르쉐 카브리올레를 몰고 가 유람선을 타고 제주도 해안도로를 몇 시간이나 달리고 온다고도 했다. 베터 사장은 현재 포르쉐 911 터보와 카브리올레 2종을 몬다. 베터 사장의 첫 차는 폭스바겐의 ‘비틀’이었다. 1986년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당시 500마르크(40만원가량)를 주고 샀단다. 그는 “폭스바겐 비틀을 포르쉐가 개발했다”면서 “포르쉐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라며 또 한 차례 재치를 발휘했다. 사실 독일인들에게 폭스바겐은 국민차다. 베터 사장의 아버지도, 그의 할아버지도 평생 폭스바겐만 몰았다. 잘나가는 사람들의 꿈은 의외로 소박하다. 베터 사장도 예외는 아니다. 3,920㎞의 미국의 오래된 대각선 도로인 ‘루트(Route) 66번’을 모터바이크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일주해보는 게 소원이다. 16세 때 위험천만한 모터바이크 사고를 낸 후 창고에 처박아놓고 다시는 꺼내지 않았지만 말이다. “포르쉐 컨버터블을 타고 달릴 때면 당시 모터바이크를 탈 때 바람이 머릿결에 스치는 그 기분이 되살아나 좋습니다. 모터바이크의 장점은 느끼고 단점을 보충할 수 있는 게 바로 포르쉐죠.” 베터 사장은 여느 독일인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1996년 대학 재학 시절 파트타임으로 마케팅회사에서 일했는데 고객회사 가운데 포르쉐가 있었다. 벤델린 비데킹 회장부터 폭스바겐 비틀을 디자인한 페르디난트 포르셰까지 포르쉐의 각종 주역을 다 만났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박스터 론칭 행사를 할 때 프리랜서로 비데킹과 인연을 맺었다”는 그는 “당시 비데킹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고 회고했다. “대학 졸업 후 포르쉐에 들어오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더군요. 이력서를 보내주면 내부적으로 채용을 검토하겠다면서 말이에요.” 이듬해 베터 사장은 포르쉐 세일즈마케팅팀에 합류했다. 그는 당시 비데킹으로부터 받은 명함을 굳이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의 집무실에서 가져온 큰 앨범 2개 두께의 명함집을 가져오더니 자랑스럽게 비데킹의 명함을 꺼내 보였다. 그가 이처럼 비데킹과의 인연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것은 비데킹이 그의 멘토이기 때문이다. 비데킹은 1992년 포르쉐자동차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해 도산 직전에 있던 포르쉐를 세계 최고의 수익률을 자랑하는 자동차로 탈바꿈시켜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로 손꼽히는 인물. 비데킹이 내민 작은 손이 자신을 아시아시장에서는 3번째로 큰 한국 수입사의 CEO로 이끌게 될 줄은 몰랐다며 12년 된 명함을 재자리에 꽂아넣었다. 베터 사장이 말하는 포르쉐의 남다른 매력은 주중에는 출퇴근용으로 쓰다가 주말에 당장 경주용으로도 뛸 수 있다는 데 있다고 했다. 그는 ‘남다르다’는 말을 몇 번씩 강조했다. “포르쉐에는 오랜 원칙과 논리가 있어요. 1948년부터 키를 꽂는 시동장치를 왼쪽에 두는 것을 고수해왔어요. 당시 카 레이서들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남다른 배려 였죠. 한번은 또 독일 라이프치히에 스포츠유틸리티 모델인 ‘카이엔’ 생산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정부가 7,000만유로의 지원금을 준다고 했었어요. 포르쉐는 ‘우리가 우리의 차를 만드는데 국민 세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단호히 거절했죠. 1년에 10만대 생산하고 있는, 규모가 작은 회사지만 그 몇 배 규모의 폭스바겐그룹을 인수한 곳이 포르쉐이기도 합니다.” 베터 사장이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포르쉐의 판매는 세 배가량 증가했다. 포르쉐는 한국시장이 오는 2015년에는 지난해 4,000대 판매실적을 올린 일본시장을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450대 판매가 목표다. 차 한 대당 평균 1억~2억원을 호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적은 수치는 아니다. 7월에는 911 모델이 신모델에 이어 내년 하반기 포르쉐의 첫 세단인 파나메라가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아직 디자인도 나오지 않았지만 고객 2명이 벌써 예약을 해놓은 상태”라고 귀띔했다. 2개에 불과한 서비스센터도 2010년에는 6개로 늘릴 계획이다. 현재 경기도 일산과 인천ㆍ대구ㆍ대전ㆍ광주 등 4개 지방 대도시에 공식 딜러도 모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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