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약발 안먹히는 저출산 대책

절친한 취재원인 대기업의 L차장. 그는 다섯 살, 세 살 두 아이의 엄마다. 요즘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 유치원이다. 주변의 회사동료나 친구들을 둘러보니 상당수가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어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골치를 썩고 있다는 것. 일반 유치원 학비는 한 분기에 70~80만원을 내는 데 비해 영어 유치원은 한달에 70~100만원을 내야 하니 아무리 맞벌이라지만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 남편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손사래부터 쳤다. 일단 L은 “당신 회사 동료들한테 어떻게 하는지 물어나 보라”고 했다. 다음날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무래도 보내야겠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어 유치원은 강남의 일부 고소득층들만 보내던 사교육이었지만 이제는 웬만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보낼까 말까 고민할 정도로 끝 모르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1.08명으로 떨어졌다는 기사로 온 나라가 시끄럽던 지난주 또 다른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10대 그룹 계열 66개 상장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그룹의 남성 직원 수는 4.04%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여성 직원 수는 30.89% 증가, 남성 직원보다 7.64배나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는 통계였다. 이 두 사례에 저출산 현상의 근본 원인이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저출산 현상은 사실 간단히 생각하면 육아와 교육에 대한 과도한 부담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우리나라처럼 육아ㆍ탁아 문제가 제도적으로 거의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 일하는 여성들이 인생 선배들의 육아나 사교육 고민을 지켜보면서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저출산 현상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데 비해 정부 대책은 아직도 뜬구름 잡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저출산 통계가 발표될 때마다 정부는 지난 2004년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2006년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 등을 해마다 꾸리고 있을 뿐이다. 저출산 문제는 단발적 대책으로 약발이 먹힐 만한 단계를 지난 지 오래다. 단기적으로, 또 중장기적으로 여러 갈래의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내놓을 필요가 있으며 저소득층, 고학력 중산층 등 대상에 따라 차별화된 대책이 논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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