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이러다간 모두 떠난다

밑지고 팔라는 데 별 수 있나

지난 2004년 10월로 시계를 돌려보자. 최태원 SK 회장과 SK㈜ 고위 임원들이 중국 베이징에 모여 이사회를 개최했다. 현지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기자는 이사회가 열리는 호텔로 달려갔다. (초청한 것도 아닌데) 기자가 불시에 들이닥치자 SK 임원들은 몹시 당황했다. 최 회장을 밀착마크하며 중국에서 이사회를 연 이유와 왜 중국 사업을 고집하는지 등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국가기간산업인 정유와 통신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 중국에서 이 사업을 벌인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최 회장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묘한 웃음으로 답했다. “선수가 다 아시면서…”라는 한 마디만 던지면서. 기자는 그때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중국에서 국가기간산업을 한다고 우기나. 제 정신이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 같은 생각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 발언으로 시작된 정부의 빗나간 물가안정 대책과 SK가 영위하는 사업의 본질적인 한계를 보면서 그 답을 찾았다. 최 회장의 묘한 웃음의 퍼즐이 풀린 것이다. SK가 해외사업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택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한마디로 살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 SK의 주력사업(정유ㆍ통신) 모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업종이라 정부에 밉보일 경우 한순간에 기업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리터당 100원을 깎아주겠다고 한 기름값 인하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정유사들은 석유사업에서 1,000원어치를 팔아 20~30원을 남기는데 그쳤다. 이윤을 챙겨야 할 기업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밑지고 파는 비극이 생긴 것이다. 이문이 작은데 기름값을 내려야 하고 막대한 돈을 들여 통신망을 깔아놓고 투자비를 챙기기 전에 요금을 내리라고 강요하면 세상에 살아 남을 기업은 하나도 없다. 손해 보며 장사를 해야 하고 고속도로 깔아 놓고 통행료 받지 말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버틸 수 없다는 얘기다. 누가 이런 나라에서 기업을 하고 싶겠나. 그러니 해외로 눈 돌릴 수밖에. SK는 아직도 중국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수업료를 지불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SK가 해외 사업을 집착하면서 얻은 것은 너무 많다. 무엇보다 임직원들의 마인드를 바꿔놓고 수출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과물이다. 실제 2003년 35.4%에 불과하던 SK 제조업의 수출 비중이 올해는 61%까지 높아졌다. 만약 SK가 해외진출과 수출에서 답을 찾지 않고 내수에만 안주했다면 어찌 됐을까. 아마 SK라는 이름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살아 남았다고 해도 (최근과 같은 상황이라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영위하는 사업 특성상 해외진출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어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SK와 같은 심정으로 해외로 나가겠다는 기업이 한 둘이 아니라는데 있다. 내수기업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심지어 본사까지도 해외로 옮기고 싶어하는 기업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다. 적정한 이익을 지켜주지 않는 곳에서 사업을 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정서법 때문에 못 가는 거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누가 한국에 남겠어”라며 한숨을 내쉬는 한 기업인의 푸념이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 모두가 떠난 뒤에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다. 왜 기업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뒤늦게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g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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