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에서 열린 2008년도 제18차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
|
시장 예상대로 9월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동결됐다. 물가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다소 여유가 생긴 반면 경기둔화 목소리는 크고 9월 위기설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도 여전하며, 특히 중기 및 가계 부채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날 시장의 관심은 향후 금리 전망에 맞춰져 있었다. 이에 부응하듯 한은과 이성태 총재는 이례적으로 ‘성장’과 ‘경기’에 관심을 표명했다. 시장은 이를 당분간 ‘금리동결’이라는 시그널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동결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물가 오름세는 여전하지만 상승압력 강도는 다소 약해진 반면 경기침체 속도는 가팔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ㆍ4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0.2%로 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설비투자도 7월 말 추정치보다 나빠진 0.9% 증가에 그쳤고 건설투자도 1ㆍ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 총재 역시 “소비나 투자 등 내수가 위축돼 경기둔화가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도 전망이 밝지 않다. 세계경기 침체로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반기 수출 증가율이 20%를 넘어섰지만 선진국의 경기침체로 개도국의 경기둔화가 불가피해져 4ㆍ4분기 수출 증가율은 10% 내외로 추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시장 불안감도 금리정책의 제약요인이었다. 9월 위기설은 진정됐지만 주가와 환율이 연일 출렁대는 등 여전히 안정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총재 또한 “금융시장 가격변수가 불안하다”며 시장의 불안심리를 금리동결 이유로 들었다. 여기에 66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중소기업들의 자금난도 고려대상으로 판단된다. 금리인상시 경제주체의 금융부담이 막대해지면서 경기부진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국제유가 하락으로 5.6%로 전월(5.9%)보다 내렸지만 여전히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고, 특히 근원인플레이션은 4.7%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도 “환율급등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물가는 상당기간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경계감을 유지했다.
이 같은 정황을 감안할 때 전문가들은 올해 말까지 금리동결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물가오름세가 한번 꺾여 상승압력이 완화돼 주요 관심사는 실물경기로 옮겨갈 것 같다”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인상은 어렵고 그렇다고 물가가 확실하게 안정된 것도 아니어서 인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연내 금리동결을 점쳤다.
공동락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아직까지는 물가 쪽에 무게중심이 더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서히 경기 쪽으로 관심 범위가 넓어지는 분위기”라며 “통상 연말에 금리조정을 안하고 해외변수도 여전해 불안심리가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 스탠스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 총재는 “국제금융시장 상황이 나쁘고 물가는 높고 성장률은 낮아지는 상황”이라며 운신의 폭에 제약이 많음을 시사했다. 또한“국가 전체적인 입장에서 하반기 성장률 3%대 하락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경기요인 역시 통화정책의 주요 고려사항임을 내비쳤다. 한은도 공식적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완화와 더불어 성장모멘텀 약화 방지에 주력해야 한다”며 향후 금리동결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한편 이 총재는 “국내 금융시장이 외부에 많이 노출돼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되기 전까지는 변동성이 가끔 있을 수 있다”며 “9월 위기설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이 이제 다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성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돼야 이러한 ‘설’도 없어질텐데 국제금융시장 사정이 미국의 주택시장과 연결돼 있어 가까운 장래에 평온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