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칭찬만 듣고 싶어요"

“혹세무민, 덧셈ㆍ뺄셈도 못하는 무식, 위조지폐범….” “적반하장, 아전인수….” 국회에서 여야가 주고받은 설전을 옮긴 단어가 아니다. 지난주 재정지출 규모가 정부 추계보다 크다고 지적한 일부 언론을 비판한 현직 장관과 정부부처 고위관료의 발언이며 국정브리핑에 사용된 단어들이다. 이러한 표현은 전 국민이 다 지켜보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나왔다. 비판과 논쟁의 형식을 빌린 싸움에도 격(格)이 있게 마련인데 이 같은 원색적인 표현은 고위관료의 발언이나 정부 공식 홍보물에 등장할 수준은 아니다. 과격한 언사는 그래서 ‘윗분’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무성하다. 기획예산처가 언론의 ‘무책임함’을 질타할 무렵 국정홍보처가 전 공무원들에게 “언론보도에 댓글을 달아 반박하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듯 기획처 장관의 언론에 대한 ‘불호령’을 다룬 인터넷 기사 아래에는 152.99.XXX.XX로 시작하는 정부부처 IP의 댓글이 굴비처럼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국정홍보처의 한 고위간부가 발간한 책에는 “댓글도 국정운용의 한 수단”이라는 황당한 표현까지 나왔다. 요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ㆍ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책연구원의 연구원들과 통화하기도 상당히 어려워졌다. 윗분들 눈치를 보느라 기자들과 통화하기가 꺼려진다는 것이다. 자칫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라도 냈다가는 “기자와 통화한 내용 다 보고하라”는 엄중한 지시가 내려온다며 빨리 전화를 끊자고 한다. ‘빅브러더’의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는 고백도 들었다. “듣기 싫은 소리, 정부에게 함부로 하지 마라,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라는 인식이 정부 내에 팽배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물론 때로는 언론에서 건전비판과는 거리가 먼 ‘의혹’이나 ‘비난’ 수준의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언론보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거의 ‘히스테리’ 수준이다. 쓴 소리 속에서 고칠 점을 찾는 관(官)의 모습을 최근 몇 년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이렇게 잘하는데 왜 칭찬해주지 않느냐”는 볼멘소리만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언론보다 홍보를 원한다면 차라리 국정홍보처를 하나 더 만드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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