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시장개방과 의료산업화

근래 들어 언론매체에 의료산업화에 관한 찬반 양측의 주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찬성하는 쪽의 주장이 매우 허황되고 다분히 기만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를 반대하는 쪽도 상대 쪽 주장의 자가당착을 적절히 지적하지 못하고 몇 가지 부작용만을 판에 박은 듯 반복하는 경향이 강하다. 의료산업화를 주장하는 구실 중 하나는 의료서비스 시장개방에 대비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미리 산업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방은 피할 수 없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를 드러낸다. 그런데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 분야 협상에서 해외 의료기관 설립ㆍ운영이나 의료인력의 국가간 이동의 양허를 요구하는 쪽은 대개 개발도상국이고 선진국은 이 분야가 해당 국가의 사회정책적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수세적인 입장이라 타결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따라서 큰 위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의료법은 의사인 개인이 의료기관을 개업해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가로 이윤을 취하는 것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법인이 의료기관을 설립ㆍ운영할 경우 그 수익을 설립자(자본제공자)에게 배당하지 못하고 법인 내부적으로만 사용하도록 돼 있어 국내 병원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를 차단하는 효과를 발휘해왔다. 의료산업화 핵심 중 하나인 영리법인의료기관 설립허용의 의미는 이런 제한을 풀어 병원을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하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자본시장이 이미 개방돼 있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를 피할 방법이 없다. 의료산업화는 시장개방의 위협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바로 시장개방 그 자체인 것이다. 현재 국내 재벌들은 우리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지나치게 높아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려우므로 지배구조개선 압력을 완화하거나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산업화를 주장하는 쪽에 기업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기업이 사회에 중요한 의료서비스가 외국자본의 지배에 내맡겨질 위험을 애써 외면한 채 행여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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