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Culture & Life] 경마선수 문세영

경마는 순간순간이 도전… 말과 하나될 때 최고 쾌감 느끼죠<br>수능친 뒤 우연히 말 처음 타봐… 작년 147승 국보급 기수 우뚝<br>마카오 활동으로 시야 넓어져 후배들 세계로 눈돌려 보길<br>아내와 만남은 또 하나의 운명… 선수생활 이해하는 최고 선생님



지난해 5월 코리안 더비 우승 후 가족과 함께.

'622전 147승.' 서울경마공원에서 활동하는 기수 문세영(33)이 지난해 거둔 성적이다. 2008년 자신이 세웠던 한국경마 역대 한 시즌 최다승 기록 128승을 19승이나 더 늘린 것이다. 다승 2위는 83승의 조인권 기수였다. 최단 기간 100승 돌파와 최단 기간 통산 800승 달성 등 주요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는 중이다.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통산 1,800승을 돌파한 '황제' 박태종(48)을 이을 '황태자'에서 이제 '국보급 기수'로 바뀌었다.

국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그는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1~3월 3개월 동안 마카오 타이파 경마장의 초청을 받아 정식기수로 활동한 것. 마카오 경마는 상금 수준에서는 한국에 다소 못 미치지만 세계 경마국가 분류에서 파트2에 속해 파트3에 속한 우리나라보다 수준이 높다. 홍콩이나 미국 경마 진출을 위한 중간 기착지로 삼으려는 각국의 수준급 선수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상금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마카오로 간 이유는 상위 경마국가인 그쪽에서 항공과 숙소ㆍ통역ㆍ보험혜택 등 상당한 예우를 해주기도 했지만 곧 30대 중반이 되는데 지금이 아니면 새로운 도전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마카오 무대는 만만찮았다. 한국과는 반대로 경주로를 시계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채찍을 왼손에 쥐어야 했고 잔디 경주로는 한국의 모래 경주로에 비해 단단하고 빨랐다.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펼치는 외국 선수들의 거친 경기는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국 최고 기수는 역시 달랐다. 2주가 지나면서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4번째 경주 만에 첫 승을 올렸다. 3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69차례 경주에 나서 7승과 2위 5차례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스타트와 기승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았다. "돌을 막 지난 딸도 있어 어렵게 결정했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이 모든 면에서 플러스가 됐습니다. 서울에 돌아오니 왠지 모르게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행동에 여유가 생겼어요. 뛰어난 후배들이 많은데 일찍 해외로 눈길을 돌린다면 충분히 세계무대에 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경남 밀양의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문세영은 고등학교 때 태권도 선수를 했다. 수능을 치른 뒤 그는 학교에서 우연히 KRA한국마사회의 경마기수 모집 공고를 보고 경험 삼아 신청을 했다. 승마는커녕 태어나 말 구경도 못해봤던 그가 '국보급 기수'의 운명으로 접어든 순간이었다.

한국경마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그는 "모든 게 우연이었다"며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중단이나 포기를 안 하는 성격 때문에 몸에 무리가 오더라도 주어진 일은 꼭 하고야 마는 편"이라는 그는 "어려운 형편 속에 쉬지 않고 일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인 것 같다"며 공을 부모님께 돌렸다.

또 하나의 운명적인 만남은 결혼. 군 제대 후 서울경마공원에 복귀한 그는 마사회 방송 아나운서로 일하는 김려진(32)씨를 카메라 기자의 소개로 만나 2009년 결혼에 골인했다.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첫 기회는 경마선수가 된 것, 두 번째는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마기수의 예민한 성격을 이해해주는 최고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지요. 대인 관계와 매스컴을 대하는 방법, 심지어 손 씻는 방법까지 새롭게 배웠어요(웃음). 이번에 마카오 도전도 아내가 적극적으로 권했습니다." 문세영은 결혼 때 약속한 대로 대학에도 진학해 4학년 1년만을 남겨두고 있다.

2011년 10월 얻은 딸 도윤이는 '복덩이'였다. 득녀 후 지난해 최고의 성적을 낸 그는 '삼관(트리플 크라운) 경주' 중 코리안 더비와 농림수산식품부장관배를 제패해 더블 크라운도 달성했다. 삼관 경주는 KRA컵 마일까지 합친 3개 시리즈를 말하는데 그해 최우수 국산 3세마를 가리는 중대한 레이스다. 특히 문세영은 지난해 5월 코리안 더비를 자신의 역대 최고 경주로 꼽는다. 경주마 '지금이순간'에 올라탄 그는 경주 내내 후미 그룹에서 기회를 노리더니 결승선 약 200m를 남기고 스퍼트를 올려 '노벨폭풍'을 0.1초 차이로 제치고 1위로 들어왔다.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였기 때문에 보통 우승 여운이 일주일 정도 지속됐다"면서 "준비 과정에서 말이 잘 따라줬고 경주 때도 말이 길을 알아서 찾아가듯 뛰어줬다"고 돌아봤다.

그렇게 말과 일체가 되는 게 경마선수의 쾌감이라고 말을 이었다. "경마선수로 산다는 것을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닌 말이 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의 경주에도 수많은 변수가 있어요. 말이 최고의 기분으로 달리도록 비위를 맞춰줘야 하지요. 경마선수는 순간순간 최상의 조건을 만드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승의 비결에 대해서는 "'마칠인삼(馬七人三)'이라는 속설에 정말 동의한다"면서도 "경기 영상을 보며 타게 될 말들의 특성을 체크하고 수술이나 병력은 꼭 조회한다. 타봤던 기수에게 조언을 구해 전략을 짜고 그에 맞춰 훈련시킨다"고 설명했다.

승승장구한 그에게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군 제대 한달 만에 출전한 2007년 새해 첫 경주에서 자신이 탄 말의 앞쪽 두 다리가 부러져 낙마한 것. 왼쪽 어깨 골절로 3차 수술을 받아야 했던 그는 경주를 그만둘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박태종 기수와의 비교를 부탁하자 "나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성실함을 쫓아가려는 노력이 비슷하다면 비슷한 점"이라며 활짝 웃은 뒤 "오랜 세월 선수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성적을 올리는 '큰 산'이 있으니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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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세영은 마카오에서 돌아오자마자 4월 첫주 말 3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복귀했고 14일에도 2승을 더 보태면서 다시 우승 행진의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40세가 될 때까지 7~8년 동안 최선을 다해 선수생활을 하고 2년 정도 해외 연수 뒤 심판으로 일하고 싶다"는 목표를 밝힌 그는 "마카오에서 짬을 내 몇 차례 홍콩 경마장을 찾았는데 새해 첫 경주에 11만명의 팬들이 몰려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가 매우 부러웠다"며 국내 경마 붐에 대한 바람도 넌지시 표시했다.

He is…

▲1980년 9월4일 경남 밀양 ▲2001년 경마기수 데뷔 ▲2003ㆍ2008ㆍ2011ㆍ2012년 최우수 기수상 ▲2004년 한국마사회장배 우승 ▲2007년 KRA컵 클래식ㆍ그랑프리 우승 ▲2008년 시즌 최다승(128승) 신기록 ▲2012년 시즌 최다승(147승) 신기록, 통산 800승 돌파, 코리안 더비ㆍ농림부장관배 우승






새벽5시출근… 토·일요일 6~7경기씩 뛰어
쉬는 화요일엔 골프 등으로 스트레스 해소


■ 경마선수 24시

박민영기자

문세영이 소속된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경마대회가 있는 날은 매주 토ㆍ일요일이다. 기수들은 화요일 하루를 쉰다. 출근 시간은 매일 새벽5시다.

경기가 없는 날 오전에는 4시간 동안 자신이 소속된 조(마방)의 경주마 훈련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자신의 훈련이기도 하다. 걷기와 구보 등으로 말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자신의 말몰이 테크닉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주말 올라타야 할 말이 목요일에 결정되고 나면 말의 상태를 좀더 면밀히 관찰하고 감독(조교사)과 함께 전략을 세우며 경주를 준비한다. 훈련 뒤에는 아침식사를 하고 2시간 휴식을 취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2시간 정도 자율훈련을 한다. 무릎과 허리의 크고 작은 부상이 잦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재활에 매달린다. 부상이 없는 선수들은 각자 체질에 맞게 등산이나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을 보강한다. 댄스나 복싱을 하는 선수도 있다고 한다. 이후는 자유시간이지만 대부분 새벽 기상을 위해 밤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든다.

경주가 있는 날은 새벽5시부터 마지막 경주가 끝나는 오후6시 무렵까지 긴장의 연속이다. 보통 50㎏의 체중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체중측정을 하는 오전10시 전까지 식사를 거르고 사우나에서 땀을 빼야 하는 일도 많다. "하루 6~7경기 넘게 이틀 동안 뛰고 나면 파김치가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말이 힘들지 사람이 힘들까' 생각할 법도 하지만 선수의 체력 소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경주 도중에는 다른 말들 사이의 작은 틈새라도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쉬는 날인 화요일에는 3년 전 시작한 골프로 스트레스를 풀고 집중력 강화도 도모한다. 그는 "존경하는 선배인 박태종 기수와 함께 라운드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샷을 할 때마다 집중력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어 많이 도움이 된다"며 골프 예찬론을 편다. 그는 "최근에는 두 살배기 딸을 보느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로 횟수를 줄였다"고 했다. 스코어가 90대 초반에서 잘 내려가지 않는다는 그는 "골프가 경마보다 훨씬 어렵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골프도 말 타는 것처럼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박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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