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선정기준 불명확 법령해석도 편의대로지방자치단체의 소규모 공사 감리자 지정이 제멋대로다. 또 지자체들은 '주택건설공사 감리자 지정기준'(건교부고시 제1999-323호)을 자신들의 편의대로 해석해 일부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등 횡포를 일삼고 있어 비리로 이어질 우려마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이 지자체들이 마음대로 감리자 지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건교부의 감리자 지정기준이 불명확하고 지정권자가 선정방법 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감리자 지정은 지자체 뜻대로=서울 양천구는 지난 5월 관내 연립주택 재건축 감리자 모집공고를 냈다. 그러나 양천구는 이 감리업체 선정에 응찰한 업체가 한 곳밖에 없어 국가계약법상 '입찰요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6월5일 일방적으로 입찰 무효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단독응찰이라는 이유로 재입찰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입찰 무효화를 시킨 것은 양천구의 독단적인 판단이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건교부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가 건교부의 '감리자 지정기준'에 따라 업체 모집공고를 냈으면 끝까지 이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면서 "선정과정에서 국가계약법을 혼용해 자신들 마음대로 처리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밝혔다.
또 양천구의 한 관계자도 "민간공사에 국가계약법을 인용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앞으로 이 부분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자신들의 잘못을 일정부분 시인했다.
입찰에 떨어진 업체의 반발은 더욱 크다. 한 업체의 관계자는 "국가계약법은 국고가 투입되는 공사에 한해 적용되는 법인데 지자체 멋대로 이 법을 적용, 우리를 탈락시킨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다른 지자체에서는 단독응찰의 경우 일정 기준만 갖추면 응찰한 업체를 감리자로 지정하는 것이 관례였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업체는 서울의 다른 2개구와 경기도에서도 단독응찰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지자체 전횡 막을 장치가 없다="지자체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해당지역의 모든 공사는 포기해야 합니다.
심지어 대놓고 '다른 업체에 공사를 맡겨야겠으니 이번 공사는 포기하라'는 말까지 하는 경우도 있지요." 한 설계ㆍ감리 업체 관계자의 고백이다.
실제 A업체의 경우 경기도의 한 현장의 감리자로 선정된 이후 지자체의 등살에 오히려 손해를 보고 감리포기 신청을 해야 했다.
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미 감리자로 내정된 업체가 있었는데 그를 물리치고 공사를 수주하다 보니 지자체에 미운털이 박힌 것 같다"면서 "지자체에서 하도 까다롭게 굴어 손해를 보더라도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일정규모 이상의 민간공사 감리업체 지정권을 지자체에 맡긴 것은 사회전체에 만연한 비리를 차단해보자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지자체가 전횡을 휘두르며 오히려 이에 대한 악용의 소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소규모 공사에 대한 업체선정 기준이 모호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소규모 공사의 감리업체 선정기준이 불명확하면 모법인 국가계약법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두가지를 혼용해 재입찰과정도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업체 선정을 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앞으로 관련사례와 법령해석을 명확히 해 지자체의 전횡을 막을 규정을 신설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석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