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라그룹/말레이시아 「오토벤처」사(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차부품공급 일의 독점 깨뜨렸다/초기 미쓰비시 「텃세」에 조향장치 판매개척 애로/올 흑자기대… 아세안 무관세대비 수출전략 총력도동남아시아의 성장속도는 분명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그 뒤안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가들마다 외양적 모습은 매일같이 바뀌는데 유독 시내곳곳에 걸려진 옥외 광고판만은 여전히 일본회사 것이 태반이다. 일본에 「종속된 성장」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런 연유다. 특히 도시거리의 거울이라 하는 자동차의 「일본지배」는 두드러진다. 그런데 그런 모습과 차별성을 띠는 나라가 하나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콸라룸푸르. 이곳 중심가인 술탄 이스마일노에는 이제 일제차 찾기가 예전처럼 쉽지않다. 대신 국민차인 프로톤이 물결을 이룬다. 말레이시아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프로톤의 점유율은 약 60%. 특히 주력차종인 「위라」와 「칸실」은 시내 곳곳에 넘실댄다. 그러나 프로톤도 불과 몇년전까지는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에 가로막혀 있었다. 일본 미쓰비시(삼릉)자동차의 단순 조립생산업체라는 것이었다. 욕심많은 마하티르 수상. 그의 「일본 탈피」전략은 자동차에도 적용됐다. 『일본애들은 자기 이득 챙기기만 바쁘지, 기술이전은 하나도 시켜주지 않는다』게 이곳 자동차업체 관계자들의 불평이었다. 그래서 「대타」로 선택한게 한국업체였고, 최적의 협력업체로 꼽은게 한국 최대 자동차부품업체인 만도기계였다. 자동차용 조향장치업체 「오토벤처 한라(AVH)」는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됐다. 술탄 이스마일에서 신도시로 조성중인 셀람방지역을 거쳐 1시간 가량. 한국으로 따지면 인천항쯤에 해당되는 포트클랑항 인근에 위치한 메루(MERU)공단 한켠에 오토벤처한라는 자리하고 있다. 오토벤처한라를 처음 대한 사람들은 공장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차분함」에 적잖이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깔끔한 공장주변과 후방의 산에서 들려오는 산새들의 울음이 청명하다. 이런 기분은 그러나 공장 내부에 들어서며 조금씩 변해간다. 이 공장의 주 생산품인 스티어링 칼럼(조향장치)의 완성품을 손질중인 종업원들의 섬세한 손놀림을 보면 「작은 치열함」이 풍겨나온다. 작업장에서 만난 한 종업원은 검붉은 얼굴이 땀망울이 흘러내리면서도, 『프로톤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이 차의 작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데 자부심을 가진다』고 자심감 있는 목소리를 내비친다. 오토벤처 한라는 한라의 주력기업인 만도의 가장 성공적인 해외진출사례로 꼽힌다. 만도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국내 자동차시장의 포화를 예상, 해외시장에 발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첫번재 작업이 만도의 제동사업본부가 추진, 중국 하북성에 건설한 캘리퍼 브래이크 생산공장. 한라는 이와함께 21세기 최대 자동차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동남아시장에도 눈을 돌렸다. 일본업체들이 아성을 구축하고 있던 동남아 자동차시장에 한국의 자동차 관련 업체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맹렬한 추격전을 펼쳐나갔다. 한라도 그중 하나였고, 첫번재 타깃으로 삼은게 말레이시아였다. 한라의 전략은 마하티르 수상을 비롯한 말레이시아 경제당국의 일본 의존도 탈피의지와 맞아 떨어졌다. 특히 자동차부품분야에서는 지난 86년 이후 엔화 강세가 이어지며 정부주도로 부품국산화와 수입다각화를 적극 추진해오던 터였다. 만도의 합작회사인 자동차부품 메이커 오토인더스트리(대표 라작 하룬)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설립됐다. 라작 하룬은 이후 일본을 제외한 외국업체와의 제휴를 추진해 나갔고, 현지의 또다른 부품업체인 오토코르시아사에 현대를 통해 파워윈도를 공급하던 만도는 라작에게 최적의 파트너였다. 말레이시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진출을 노리던 한라측도 즉각 진출 아이템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조향장치인 스티어링칼럼과 유니버설조인트의 국산화가 이루어진 점이 발견됐다. 만도는 즉각 오토인더스트리와 합작회사 설립을 위한 교섭에 들어갔고, 95년1월 4백80만링깃(약1백50만달러·만도지분 30%) 규모의 합작회사 「오토벤처한라(AVH)」가 설립된다. 그러나 초기 정착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그간 프로톤에 대한 스티어링칼럼 공급을 독점했던 미쓰비시의 재고가 남아있었기 때문. 만도기계의 현지 신훈철 소장은 『지난해 10만개 이상을 생산했지만, 미쓰비시의 재고가 쌓여 6만개를 공급하는데 그쳤다』고 밝혔다. 당연 적자는 쌓이고, 지난해까지의 누적적자만 3백만링깃이 넘었다. 그러나 「97년의 오토벤처한라」는 다르다. 어찌보면 이제가 시작이라할 수 있다. 당장 미쓰비시의 재고가 마무리되면서 올해 공급량만 15만개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설립당시 기술파트를 담당하다 현재는 만도의 문막사업부에서 근무중인 이봉규 차장은 『설립 3년째인 올해부터 오토벤처한라의 본격적인 흑자전환이 기대된다』며 만도 해외진출 성공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토벤처한라의 낙관적 전망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프로톤이라는 「고정고객」에 「플러스 알파」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말레이시아 국내에서는 현지의 또다른 자동차업체인 페로두아사에 대한 부품공급이 예정돼 있다. 무엇보다 동남아시아의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신소장은 『말레이시아의 국민이 2천만명이 채 안되는 점을 생각하면 시장에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광대한 동남아시장이 있다』며 미래에 대해 강조를 두었다. 신소장은 그 구체적 이유로 오는 2003년으로 예정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무관세 실시를 내세웠다. 즉 무관세 시대가 도래할 경우 역내 국가에 대한 프로톤의 수출이 활기를 띨 것이며, 오토벤처한라 역시 그 특수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역내자동차업체에 대한 직접적인 부품수출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콸라룸푸르(말련)=김영기> ◎말련 국민차사 「프로톤」/3년전부터 대일의존 탈피 유럽진출 등 성장세 계속 「오토벤처 한라」는 실상 「프로톤」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할 수 있다. 적어도 현재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조향장치 전부가 프로톤에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벤처 한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프로톤」에 대한 정의가 전제돼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국민차」 프로톤에 대한 말레이시아 사람의 관심은 선거철에 극명하게 확인된다. 프로톤은 의례 이곳 집권당의 선전 포스터에 빠지지 않는다. 마하티르총리와 국기 다음으로 꼽히는 말레이시아의 자존심이 바로 프로톤이다. 프로톤은 불과 2­3년전까지만도 일 미쓰비시(삼릉)자동차의 조립생산업체에 머물러 있었다. 외국업체들도 이때까지는 프로톤을 하나의 자동차업체로 규정짓기를 주저했다. 프로톤의 이런 이미지는 이제 점차 탈색되고 있다. 마하티르 수상의 적극적인 대일 의존 탈피전략때문이다. 1백30여개에 이르는 밴더중엔 이제 국내업체(합작업체 포함)들도 적잖게 끼어있다. 오토밴처 한라는 바로 이들중 1급밴더로 「대접」받고 있다. 프로톤 관계자들은 이제 자사를 「말레이시아의 국민차」로만 규정짓기를 거부한다. 세계로 나간다는 것이다. 지난 95년 유럽상륙 이후 프로톤의 유럽시장 판매는 높은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영국의 스포츠카 제조업체 로터스를 인수하며 전세계 자동차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인터뷰/압둘 라힘 오토벤처 한라 총괄부장/“일보다 적극적인 기술이전 노력 늘 고마움” 오토벤처한라를 사실상 진두지휘중인 압둘 라힘 총괄부장(39)은 대학시절 산업공학을 전공한후 15년 가까이를 국민차인 프로톤과 함께 했다. 말레이시아어느 누구보다도 프로톤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자평할 정도다. 일본 미쓰비시(삼릉)자동차에서 1년여간 자동차 엔지니어링에 관해 집중 교육을 받기도 한 라힘 부장은 지난 95년 프로톤에서 이곳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일본식 경영시스템을 익힌 프로톤 그룹내 몇안되는 인물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었다. ­오토벤처한라는 사실 지난해까지만도 재무재표상만으로는 그리 우수한 업체는 아니었다고 본다. 현상황에서 이 회사를 평가한다면. ▲미쓰비시의 재고가 처분되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스티어링칼럼만 15만개를 납품할 예정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흑자전환이 기대된다. 단언하건데 오토벤처한라는 『현재보다는 미래가 강한 회사』이다. ­프로톤이 미쓰비시 대신 만도를 합작업체로 택한 이유는. ▲일본업체들은 솔직히 항상 뭔가를 숨겨놓는 기분이다. 수익만 지나치게 따지고 기술이전은 등한시한다. 마하티르수상도 이런 이유로 제3국 업체를 찾게됐고, 만도가 그중 가장 경쟁력 있는 업체로 선정된 것이다. ­만도를 합작업체로 택한데 대한 현상황에서의 평가는. ▲회사관계자 뿐 아니라 정부측에서도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만도의 적극적인 기술이전 노력에 고마움을 표한다. 우리 종업원들(말레이시아인)이 적극적으로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프로페셔널리즘이 모자란게 아쉽다. ­말레이시아의 인구수가 적은만큼 자동차시장 역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자동차시장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성장중이다. 여전히 연간 40만대 이상이 팔리고 있으며, 당분간은 현 속도가 유지될 것이다. ­오토벤처한라의 장래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듯 오토벤처한라는 미래가 강한 회사다. 프로톤 뿐아니라 제2국민차인 페로두아에도 스티어링 칼럼을 공급할 예정이다. 특히 2003년 아세안 역내의 자유무역이 시작될 경우 수출활성화도 기대된다. ­최근의 한국경제에 대해서 짧게 평가한다면. ▲한국은 이제 저물어가는 국가 아닌가. 적어도 5년안에는 말레이시아가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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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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