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26일] 왜은(倭銀), 화폐 타락


왜인(倭人)들의 사기행각이 들통났다. 인삼 등의 수입대금으로 조선에 지불하는 왜은(倭銀)의 은 함량을 낮추다 발각된 것이다. 바로 양국의 무역이 얼어붙었다. 애가 탄 것은 일본. 조선의 수출제한으로 인삼과 비단 값이 치솟았다. 조선과의 무역을 담당하던 쓰시마번의 타격이 특히 컸다. 발단은 도쿠가와 막부의 1695년 악화 주조. 은 광산의 산출이 줄어든 반면 대화재(1657년)를 당한 에도(지금의 도쿄)의 재건 비용과 대규모 건축사업으로 지출은 폭증해 돈이 궁해진 막부는 은화의 순도를 80%에서 64%로 낮췄다. 차익을 노려서다. 문제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언급될 정도로 고품위를 자랑하며 국제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자리잡았던 왜은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대로 악화가 판치자 조선은 수출 단가를 올리고 교역 자체를 제한해버렸다. 중국보다 8배나 큰 교역상대였던 조선과의 관계를 의식한 막부는 어쩔 수 없이 순도 80%짜리 특별 은화(人蔘代往古銀)를 1710년 제작하면서도 국내 통화의 함량은 계속 줄여나갔다. 1711년에는 순도가 20%로 떨어진 은화까지 찍어댔다. 한번 맛들인 화폐주조 차익의 유혹은 ‘겐로쿠 호경기’가 꺼질 때까지 이어졌다. 호황 대신 찾아온 것은 물가고와 불황의 늪. 막부는 결국 1714년 6월26일 은화별 교환비율을 정하며 통화가치 회복에 나섰지만 불황에서 벗어나기까지는 50여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개항 이전까지 왜은의 옛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왜은의 개악사는 옛 얘기일까. 한국의 원화가치가 요즘 엉망이다. 무엇보다도 실용정부가 고환율을 용인한 탓이다. 물가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통화가치 안정은 동서고금을 떠나 경제운용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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