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차기 리더로 주목 받는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중국과 일본의 거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것을 반영하듯 방일기간 동안 이례적인 환대를 받았다.
특히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시 부주석의 접견을 허용한 것을 두고 일본 내부에서도 '규칙을 깼다'는 논란이 일 정도로 기존 관례를 넘어섰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일본 정부의 파격적인 '친중' 행보는 최근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를 놓고 일본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과 상반된 것으로 미국 편중 외교에서 벗어나 외교정책의 중점을 아시아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민주당의 정권이념과 일맥상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공산당 서열 6위로 차기 국가주석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 부주석은 방일 이틀째인 15일 오전 고쿄(皇居)에서 일왕을 접견한 뒤 환담했다. 이번 일은 일왕과 외국 인사의 면담은 1개월 전까지 궁내청에 신청해야 한다는 기존 규칙을 깬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당초 중국 측의 일왕 면담 요청을 거절했으나 베이징 측의 강력한 희망과 여당 최대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의 요청 등으로 지난주 말 돌연 태도를 바꿨다.
야권에서는 "민주당 정권의 이익을 위해 규칙을 깬 것으로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뜻"이라며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일왕의 사무를 담당하는 책임자인 하케다 신고(羽毛田信吾) 궁내청 장관도 "향후 다시는 이런 유감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손님이 방문한 가운데서 논란이 일어나 안타깝다"며 "시 부주석은 중국의 차기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은 중요한 분이기에 따뜻한 환대가 적절하다"고 말했다.
오자와 간사장은 한술 더 떠 궁내청 장관의 사임마저 종용하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일본 언론들은 하토야마 총리가 밝힌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시 부주석이 공식으로 동조한 점도 중국 측의 요구를 배제하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라고 평하고 있다.
소식통들은 중국 외교가에서 일왕과 시 부주석의 첫 접견 성사 여부를 이번 일본 방문의 성패 요건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오자와 간사장이 140여명의 대규모 방문단을 이끌고 중국에 간 점도 이미 미국 측의 불쾌감을 샀다"며 "이번 행보 역시 미국 의존도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겠다는 일본의 태도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 부주석은 16일 일본 방문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온 뒤 오는 18일까지 머물면서 이명박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정운찬 국무총리 등과 회동한다.